2022년 09월 18일 주일 설교
본문: 시편 23:2 (2) (p. 818)
제목: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시 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언약을 기반으로 한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다윗은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표현을 통하여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양 된 우리들을 언약의 신학 안에서 약속(Promise)해 주시고, 공급(Provide)해 주시고, 보호(Protect)해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깨닫고 있습니다.
이러한 언약의 신학 안에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두 가지 중요한 항목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순종과 예배자의 삶입니다.
특별히 우리들은 순종과 불순종의 개념을 성경을 통하여 생각해 보았는데,
순종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것 (신명기 28:1)이고, 불순종이란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신 28:20).
성도가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을 파기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신명기 29장에서 모압의 언약을 근거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언하면서 하나님을 잊은 백성들에게 주어질 어려움을 언급하고 있는데,
첫 번째가 전염병으로서 질병이고 (신 29:22),
두 번째가 흉년이 드는 것입니다 (신 29:2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을 “푸른 풀밭에 누이신다”고 하면, 언약을 파기한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는 아무 풀도 자라지 않게 하신다는 신명기 29:23의 말씀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언약을 파기한 백성들의 특징을 모세는 신명기 8장 14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 8: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교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히브리어의 개념에서 교만이란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는 교만한 자는 목이 굳게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한다고 느헤미야 9장 1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느 9:16) 그들과 우리 조상들이 교만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그러므로 쉴만한 물가 교회는 순종함으로 언약의 백성이 되어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는 복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윗은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양 된 우리들의 삶을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오늘 본문 하반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이름은 “쉴만한 물가 교회”입니다.
“쉴만한 물가”라는 히브리어 명사는 메누하흐“מְנוּחָה”입니다.
그리고 이 명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뜻은 쉴만한 장소(RESTING PLACE) 또는 쉼 (REST)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단어를 사용하여서 목자가 양들을 푸른 풀밭에서 양식을 먹이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메누하흐”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근원적인 뜻의 의미를 알고 있으면 쉴만한 물가의 의미를 조금 더 싶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히브리어를 사용해서 조금 어렵게 느껴 지시겠지만,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보겠습니다.
쉴만한 물가라는 히브리어 명사 메누하흐 “מְנוּחָה”의 어근(뿌리)은 nûaµ인데 여기에서 파생되어서 만들어진 명사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믿음의 조상 “노아”입니다.
여러분들은 “노아”라는 이름의 의미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백팔십이(182) 세에 노아를 낳았는데, 노아 라는 이름의 의미는 “안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다 함께 창세기 5장 2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창 5: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위로)하리라 하였더라
안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노아가 죄로 인하여 땅이 부패하였을 때에 안위 곧 위로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위하여 안식을 얻을 수 있는 방주를 만드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곧 자신의 이름처럼 안식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방주 안에 들어오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쉴만한 장소를 의미하는 메누하흐 “מְנוּחָה”가 어떠한 용례로 사용되어지고 있는지 우리들은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삶을 보면 그들은 가나안을 향한 지속적인 순례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광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시험하사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지 행하지 않는지를 알려고 하셨습니다. (신 8:2)
이러한 과정 가운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고 있는데, 민수기 10장 29-36절의 말씀을 보면, 모세는 자신의 장인 호밥 (출 2:21 르우엘; 출 18 이드로; 호밥과 이드로는 같은 사람의 두 이름이며, 이 사람의 아버지가 르우엘이다)에게 간청하여서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0장 33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시내산을 떠나 삼일 길을 걷고(하루 24km x 3일=72km) 쉴 곳을 찾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수기 10장 33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쉴 곳이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있는 쉴만한 물가 메누하흐 “מְנוּחָה”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루를 바쁘게 살다 보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고, 집이 우리들의 쉴 곳이 되어집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보호하고, 믿으며 나아갑니다.
이것을 우리들의 신앙과 적용해 보십시오.
일주일을 기준으로 하여서 우리들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의 시간을 보내고 주일에 주일 예배로 모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영혼도 쉴 곳을 찾아야 하는데 바로 그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영혼이 쉴 수 있는 교회 쉴만한 물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에서,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쉬게 한다는 헬라어 동사 “ἀναπαύω”도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의미는 힘든 일로부터 안도감을 얻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어떠한 쉼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멍에를 매고 예수님께 배우면 쉼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멍에는 무엇입니까?
바로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예수님의 멍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사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서 사도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요한 계시록 7장 17절의 말씀을 보면,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시록 7장 1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들은 큰 환란에서 나오는 순교자들입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셔서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하신다면 우리들은 쉴만한 물가 교회를 통하여 이 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