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일은 우리들의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하거나 조금 더 차분하고 평온하게 합니다.
때로는 기쁜 일로 행복한 준비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려운 일로 담담한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속에서 행복한 일을 준비할 때 보다 어려운 일을 준비 할 때에 조금 더 성숙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봅니다.
행복을 준비하는 일은 기쁨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미래를 향한 희망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지난날을 생각하기 보다 앞으로 이루어질 날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들을 준비 할 때에는 앞으로 일어날 어려움을 이겨 낼 힘을 찾기 위해서 과거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과거 속에서 발견한 자신의 연약함과 행복했던 순간들은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을 이겨 낼 힘이 됩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예외 없이 다가오는 일이지만, 잘 준비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성도들의 삶 가운데에서도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이란 늘 우리들 주변에 있습니다.
행복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복한 삶을 살다가 평안하게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소망하는 일입니다.
영어 표현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하나님의 품에 안겼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Someone peacefully drifted into the arms of his/he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surrounded by his/her family at home
이러한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이 땅에서 죽음을 통과하여서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옮길 때에 소망하는 모습입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저는 문지방이 있는 집에서 자랐습니다. 문지방이란 집 안에서의 경계입니다. 마루를 건너 방에 들어가려고 하면 문지방을 넘어가야 했습니다. 또한 방 안에서 작은 방으로 갈 때에도 문지방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문지방이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넘어가는 경계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경계선은 한쪽에서는 끝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시작이 되는 시점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시점도 동일하지 않습니까?
성도가 이 땅의 삶을 모두 마치고 삶의 문지방을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에 죽음은 이 땅에서 끝이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가족과 교회와 지인들을 놓고 삶의 문지방을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가야 하기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슬픔이지만,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님에게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최근 저희 가정에 사랑을 많이 베풀어 주신 고 이신애 권사님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권사님께서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셔서 가정을 이루시고 캐나다에 이민을 오셔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시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셨습니다.
10여년 전의 일로 기억합니다. University of Toronto Mississauga 학교 기숙사에서 살 던 시절이었는데, 1950년대에 지어진 기숙사 건물이다 보니 에어컨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기억에 한 여름 날씨가 엄청 더웠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더위 속에서 온도가 섭씨 40도가 넘어갔고, 체감 온도는 50도 가깝게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 기숙사가 타운 하우스였는데 2층에는 올라갈 수도 없었고, 1층도 만만치 않은 더위였습니다. 아이들이 열사병이 걸릴까 봐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고 이신애 권사님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큰일 난다고 빨리 에어컨이 나오는 아파트로 오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더웠던 여름의 폭염을 권사님 집에서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한번은 장을 보러 가려고 하시는 데 차가 없으시다고 라이드를 부탁하십니다. 그런데 아내와 같이 오라고 하십니다. 권사님께서는 본인의 장을 보러 가신 것이 아니라 저희 가정에 고기 한번 사 주고 싶으시다고 소고기를 많이 사 주셨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목회자의 딸로 태어나셔서 목회자 가정이 어려운 걸 잘 아셔서 사랑을 많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권사님께서 삶의 문지방을 넘어 천국에 가시는데 Covid-19 상황 가운데에서 손 한 번 잡아 드리지 못해서 너무 죄송하고 마음에 걸립니다. 이 땅에 남아 있는 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슬픔인가 봅니다.
우리들에게도 삶의 문지방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야 하는 시간은 예외 없이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가능하면 그 시간이 멀리 있었으면 하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 아이들 결혼은 시켜야지요!”
“하나님, 손자 손녀 재롱도 좀 보고 싶어요!”
“하나님, 저의 삶도 좀 되돌아 보구요!”
“하나님, 저 준비가 안 됐어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하나님, …?”
그런데, 우리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는 것이 죽음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죽음의 시간입니다.
그러니, 조금 더 미리 생각하고 바르게 신앙 생활 하다가 하나님께서 문지방 넘어오라고 하시면 가면 좋겠습니다.
(빌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Php 3:20) But our citizenship is in heaven. And we eagerly await a Savior from there, the Lord Jesus Christ,
2022년 6월 17일
캐나다 토론토 쉴만한 물가 교회에서
김윤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