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4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예배
시편 3:1-8
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시편을 읽는 독자들이 저자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 시를 기록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시편을 읽어 가는 중요한 원칙이 됩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시인이 처해져 있는 삶의 정황(Sitz im Leben) 가운데에서 시인은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3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150편의 시편 가운데에서 다윗은 일흔셋 편의 시를 기록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율법은 모세가, 지혜는 솔로몬이, 그리고 시는 다윗으로 표현되어지는 이유도 다윗이 많은 시를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삶을 생각해 보면 다윗은 위대한 군인이었고, 능수능한 정치가였고, 탁월한 음악가였고, 시인이었으며, 수금의 연주자였고, 악기를 제조하는 역할까지 하였습니다.
시편 3편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시입니까?
우리가 시편 3편의 부제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시편 3편의 말씀은 자신의 아들에 의해 쫓기는 상황 가운데에서 작성한 시입니다.
다윗의 삶을 우리가 생각 보았을 때에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기 이전의 다윗과 이후의 다윗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지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점점 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을 신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는 노래 소리에서 시작이 되어진 사울의 질투는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여섯 번의 시도로 죽이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습니다. (1) 자신의 딸 미갈을 시집 보내는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의 표피 100개을 요구하였을 때에 사울의 목적은 전쟁 중 다윗이 죽는 것이었습니다(삼상 18:25).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표피 200개를 가져왔습니다(삼상 18:27). (2) 사울은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에 단창으로 죽이려 하였고(삼상 19:11), (3) 다윗이 사무엘과 함께 라마 나욧으로 도망갔을 때 죽이려고 하였고(삼상 19:18-24), (4) 초하루 때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을 때에 요나단의 도움으로 도망하였고(삼상 20), (5) 다윗이 놉에서 블레셋 가드 왕에게 갔을 때에 죽이려 하였고(삼상 21-22), (6) 다윗이 십 광야 하실라 산에 숨어 있었을 때에 죽이려 하였습니다(삼상 23:15-29).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1) 사울이 엔게디로 추격해 왔다가 용변을 보러 다윗이 숨어 있는 굴로 들어갔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베고 죽이지 않았습니다(삼상 24:5,11). (2) 십 광야에서는 사울의 창과 물병을 취해서 자신이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삼상 26:13-20).
사울의 죽음 이후에 다윗은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듯 보였지만,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범죄자로 바뀝니다. 이로 인하여 나단 선지자가 부자가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양을 뺏는 비유를 언급했을 때에 다윗은 그가 자신인 줄도 모르고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삼하 12:5)고 언급합니다. 그러자 나단 선지자는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밧세바의 사건 이후에 밧세바가 낳은 아이를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아프게 되었을 때에 7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금식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죽게 되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사하여 주셨지만, 다윗은 밧세바의 사건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다윗의 집에 재앙이 다가옵니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한 순간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이 셋째 아들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을 범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 일로 인하여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하게 됩니다(삼하 13:20-34). 또한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서 다윗을 반격하는 상황이 버러졌고(삼하 15:10), 다윗은 자신의 아들에게 쫓기는 상황 가운데에서 시편 3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1-2절에 자신의 대적이 많다고 고백합니다.
(시 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압살롬은 왕이 될 수 있는 서열 3위인데, 첫째 암논은 자신이 죽였고, 둘째 길르압도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일찍 죽은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은 밧세바의 할아버지 아히도벨과 반역을 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윗은 군사력이나 전략적인 면에서 압살롬보다 뛰어나지만 도망자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면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시 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다윗이 언급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방패가 되시는 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방패(מָגֵן)라는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 처음 나오는 성경 구절이 창세기 15장 1절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기 위해서 부르시는 과정입니다.
(창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결과적으로 다윗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는 상황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패가 되었음을 믿었을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신의 머리를 하나님을 향하여 들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언약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 상황 가운데에서도 동일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삼하 22:3)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얼굴을 들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대적들이 사방에 진을 치고 에워싸고 있다고 할지라도 평안 가운데에서 잠을 자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다윗의 마음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들은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면 왜 이러한 어려움이 다가오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범죄하였을 때에 회개로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았지만, 그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까지 용서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 시대의 히스기야를 생각해 보십시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15년의 삶을 연장 시켜 주셨을 때에(사 38),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를 보여 주면서 앗수르를 대항하여서 바벨론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 유수를 예언하십니다(사 39:6).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유수라고 하는 고난의 시간을 겪게 되는데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결과적으로 임마누엘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가운데에서 모든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물과 불의 위험 가운데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다윗에게 적용해 보면,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 쫓기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셔서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신앙 가운데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시 3: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의 확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다윗과 같이 어려움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 속에서 혼자 서 있는 느낌으로 살아갈 때도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시간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두려움 가운데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다고 하면, 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시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