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음 사이에서의 갈등
이사야 38:21-39:2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올바른 길을 걸어갔던 왕입니다. 열왕기하 18장 3절의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히스기야 왕의 죽음에 관한 선포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에게 가족들에게 유언하고 죽음을 준비하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15년의 삶을 연장 받았습니다.
이사야서 38장 21절의 말씀을 보면,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무화과를 으깬 것을 붙이면 낫게 될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히스기야의 질병은 몸의 내부와 관련된 병이 아니라 피부와 관련된 질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 38:21) 이사야가 이르기를 한 뭉치 무화과를 가져다가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 하였고
그런데 우리들은 한 가지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본문 38:22절에서 왜 히스기야는 추가적인 기적을 구하고 있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해의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가는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 38:22) 히스기야도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징조가 무엇이냐 하였더라
아마도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의 표현이라기 보다 자신의 믿음을 강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아하스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징조를 거부한 것과 달리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징조를 구함으로 믿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39장에서는 남 유다와 관련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히스기야 왕이 질병으로부터 회복되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 왕 발라단의 아들 므로닥 발라단이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내는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온 사절단을 대접하는 히스기야의 행동이 남 유다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점으로 등장합니다.
히스기야의 행동은 남 유다의 적이 더 이상 앗수르가 아니라 바벨론이 될 것이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야 39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역사적 상황을 조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므로닥 발라단은 앗수르와 대적하여서 두 차례에(주전 721-710/705-703) 왕위에 올랐던 바벨론의 통치자입니다. 그는 주전 703년 앗수르의 왕 산헤립에 의해 쫓겨난 후에 엘람(이란)으로 도피하여서 죽을때까지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서 모의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면 바벨론 왕 므로닥 발라단이 히스기야 왕이 질병에서 회복되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가나안의 작은 나라 히스기야에게 병에서 치유되었다는 이유로 사신단을 보내고 예물을 보내고 있습니까?
(사 39:1)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므로닥 발라란이 주전 703년 앗수르의 왕 산헤립에 의해 쫓겨나기 이전에 자신의 세력을 모으는 이유는 앗수르에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만일 애굽까지 함께 한다고 하면 앗수르와 한번 해 볼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히스기야 왕도 바벨론이라고 하는 대국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자 잘못된 바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과 교만의 마음이 작동해서 남 유다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바벨론 사신단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사 39:2)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
우리들은 이 사건을 통하여 히스기야 앗수르에 반역하게 되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마음 가운데에서 하나님과 바벨론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누구를 의지하면서 나아가야 합니까?
함께 기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