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선지자의 벗은 몸의 상징적 의미
이사야 20:1-6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사야서 19:1-15절에서 우리들은 애굽 백성들의 심판의 내용을 사회적, 경제적 붕괴, 정치적 몰락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심판 가운데에서도 이사야 선지자는 다섯 번의 “그날에”라는 표현을 통하여 장차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고 있는데, 애굽이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나아갈 때에 애굽의 백성들이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여호와께 감사하게 되어지고, 이스라엘과 앗수르와 더불어 하나님께 복을 받는 백성들이 되는 모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사야서 20장에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애굽이 처해 있는 현실의 암담함과 암울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기록하고 있는 예언의 특징은 19장에서 먼 미래에 관한 희망적인 약속을 전했다고 하면, 20장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관한 현실적인 심판을 기록하여 심판이 교차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고,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이사야 선지자의 상징적인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 20:1)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다르단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니라
본문 1절에 등장하는 ‘아스돗’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50km 지점으로 유다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받은 성읍(수 15:47)입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 때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싸움에서 블레셋 땅으로 넘어간 지역으로(삼상 1-4장) 블레셋의 5대 도시 중 하나입니다.
아스돗은 대표적인 친 애굽 정책을 펴고 있었던 도시인데 앗수르가 주전 711년에 사르곤 2세 왕이 침략하였을 때에 애굽의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고 멸망한 도시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의 말씀을 보면,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요구하시는 행동은 3년 동안 옷을 벗고 다니는 것입니다.
(사 20: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우리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3년 동안 완전히 벗은 몸으로 다녔는지, 부분적으로 옷을 입고 다녔는지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상징적인 행동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요구하고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3년 동안 옷을 벗고 다니는 것이 애굽과 구스 땅의 백성들이 앗수르에 의해서 포로가 되어서 끌려 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본문 4절에서 이러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 20:4)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엉덩이)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이러한 모습을 보고 놀라고 부끄러워 하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바로 남 유다의 사람들입니다. 앗수르의 배신으로 애굽에 도움을 청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유다의 백성들입니다.
유다의 백성들이 놀라는 이유는 애굽은 아스돗의 백성들처럼 애굽을 의지했던 자들을 실망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들조차 구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 20:5)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그래서 유다의 백성들의 입술에서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사 20:6) 그 날에 이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이사야가 벗은 몸으로 놀랄 것이 아니라 그 상징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을 의지한 자들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바로 절망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귀하고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