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영적 부흥은 준비 과정이 필요합니다
마가복음 11:12-14
김윤규 목사
1. 무화과 나무가 저주를 받는 사건이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는 시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다는 사실과(막 11:12-14),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이 하신 후에(막 11:15-19) 다시 무화과 나무를 보았을 때에 나무가 말라버렸다는 사실입니다(막 11:20-21).
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막 11:1-10), 베다니에서 떠나가실 때에 시장하셨고, 한 무화과 나무를 바라보게 되셨습니다.
(막 11: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3. 예수님께서 시장하셨다는 의미는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배가 고프셔서 좋은 열매를 찾고 계시다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좋은 열매의 대상은 무화과나무입니다.
4. 무화과나무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모습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부끄러워서 치마를 만들 때에 무화과 잎을 사용하는 모습입니다(창 3:7).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할 비옥한 땅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데 이스라엘의 7가지 대표적인 열매 중에 하나가 무화과 열매입니다.
(신 8: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 관계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왕상 4:25)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5. 오늘 본문 말씀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영적 상징으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14절 말씀에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는 요한 마가의 표현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는 표현입니다.
6.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는 시간적 개념의 차이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고 계신 시점은 유월절 전으로 봄입니다.
요한 마가가 언급하고 있는 “무화과의 때”는 열매를 수확하는 가을입니다.
7. 예수님께서 찾고 계신 무화과의 열매는 익지 않은 작은 열매로 ‘파게’입니다.
그러나 요한 마가가 언급하고 있는 무화과의 열매는 성숙한 열매로 ‘테에나’입니다.
(막 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벳바게: 익지 않은 무화과나무의 집
베다니: 무화과의 집
8.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 무화과나무에서 작은 ‘파게’를 찾고 계셨는데 이 무화과나무는 잎사귀만 무성하지 열매를 맺으려는 작은 열매가 없었습니다.
(막 11: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9.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비록 자신들이 언약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유대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잎사귀만 무성할 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10.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고 외치면서 세례 요한이 요구하고 있는 삶이 무엇입니까?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마 3:8).
11.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봄철에 새순이 나오고 잎사귀가 자란 후에 맺히는 작은 열매 ‘파게’가 성장하여서 가을에 무화과 열매 ‘테에나’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12. 2023년 2월 8일 애즈베리 부흥(Asbury revival) 운동
1907년 2월 15일 평양 장대현 교회 부흥 운동
13. 영적 부흥을 위해서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을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져 있는 오순절 성령의 부흥의 운동도 기도의 준비과정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영적인 부흥도 회개하고 기도하는 준비의 과정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