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3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예배
마가복음 13:7-8
두려워 하지 말라
마가복음 13장에 기록되어져 있는 종말론적인 예수님의 메시지는 마가복음 12장에 기록되어져 있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행동과 연결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포도원의 비유(막 12:1-12)를 통하여 우리들은 자신의 아들까지 내어 놓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반역하여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가르침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면서 부활의 소망 가운데에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삶이 아니라 가난하고 연약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권위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지는 건물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남편을 잃은 아내의 두 렙돈 곧 참새 반 마리의 가치에 불과한 헌금까지 착취하여서 성전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탐욕으로 물들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의 삶을 바라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성전 붕괴를 예언하고 계신데, 이 예언은 AD 70년 8-9월경 로마의 황제 티투스의 공격에 의해서 성취되었지만, 예수님 당시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성전 붕괴와 관련된 예수님의 메시지(요 1:19)는 어떻게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삼일 만에 재건할 수 있는가에 집중되어져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전 된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부활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의 질문을 통하여 제자들이 종말의 시간과 징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살아가는 삶의 원칙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첫 번째 원칙은 미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미혹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징조와 기적을 보여 주면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속여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분명한 길어서 벗어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7-8절의 말씀을 통하여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예수님의 두 번째 원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막 13: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막 13: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종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번째 원칙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말의 시간에 관하여 우리가 생각할 때에 중요한 특징들 중에 하나는 전쟁의 소식들이 들려온다는 사실입니다.
‘난리’라고 번역을 하고 있는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8절에서 언급되어지는 것처럼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서로를 대적하여서 싸우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언급하고 계신 지진과 기근을 생각해 보면, AD 62년경에 발생한 지진에 의한 폼페이 화산 폭발과 사도행전 11장 28절에 기록되어져 있는 로마의 4대 클라우디우스(글라우디오) 황제(AD 41-54) 때에 발생한 기근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종말의 시간이 다가올 때에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려워한다는 것은 미혹함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전쟁과 지진과 기근의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만들어냅니까?
바로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 전쟁과 지진과 기근이 발생하였으므로 세상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우리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을 하는 거짓된 그리스도(막 13:6)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유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종말의 시간과 징조를 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계신 가르침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종말의 시간에 나타나는 징조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두려움의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구약의 역사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의 포로 생활을 한 시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생을 의지하고 우상을 섬기고 있었을 때에 그들을 바벨론의 포로라고 하는 고난의 풀무 불에(사 48:10) 던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바사)의 왕 고레스를 일으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사 41:2; 44:28; 45:1).
그러나 두려움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만들게 하였고,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의 문제를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를 일으키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두 번째로 우리가 종말의 시간에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구원의 확신이 희미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의를 스스로 만족시킬 수 있는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하여서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고 악을 행하는 삶의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벳세다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위에서 가르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사실을 가르치셨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들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허물로 죽은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셔서 구원을 허락해 주셨다고 하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깨닫지 못하고 종말의 시간에 두려워 하고 있다고 하면, 두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의미를 분명하게 깨닫지 못한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감란산에서 성전을 바라보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깨닫지 못하면서 종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고 부활의 사건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다는 구원에 관한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신앙이 하나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