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9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예배
마가복음 13:1-2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를 언급하고 계신 예수님의 메시지는 단순히 예루살렘 성전 붕괴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동과 가르침에 의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역사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상징하는 성전의 역사를 짧게 생각해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은 성막으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인 40장의 말씀을 근거해 보면, 시내산에 임했던 여호와의 영광은 성막에 임하게 되었고(출 40:34-35),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하심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막의 역사는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됨으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됩니다(BC 967에 시작되어서 7년 후에 완성).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연설하고 있는 내용을 생각해 보면,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실 영원한 처소가 되어집니다.
(왕상 8:13)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인생을 의지하고 우상을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라고하는 고난의 풀무 불에 던지셨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하게 되었고(BC 587/6),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바사)의 왕 고레스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고,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귀환하여서 지은 성전이 스룹바벨에 의해서 재건된 성전입니다(주전 516년 경).
스룹바벨에 의해서 건축된 성전도 기원전 169-7년경 시리아의 왕 안티오쿠스에 의해서 1차 파손이 되었고, 마카비 왕조에 의해서 재건된 성전은 기원전 67년경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서 다시 파손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전은 유대인 유화 정책을 폈던 헤롯에 의해서 재건되었는데 기원전 20년경에 착공이 되어서 성전의 외벽은 9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성전의 내부 공사 63/64년경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언하고 계신 시간에는 성전 내부 공사 중이었는데,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에서 제사에 사용이 되어질 제물을 판매하면서 이윤을 추구하고 있었고,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강도의 소굴’(막 11:17)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12장 41-44절의 말씀으로 생각해 본 내용처럼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 지도자들은 당시 참새 반 마리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과부의 전 재산 두 렙돈까지 헌금하도록 강요해서 성전을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제자 중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독립적인 내용이 아니라 마가복음 12장의 말씀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막 13: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우리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헬라어 성경의 의미는 “이 돌들이 얼마나 웅장하며 이 건물들이 얼마나 웅장합니까?”라는 경이로운 표현입니다.
누가는 오늘 본문 말씀과 동일한 문맥에서 본문을 기록하면서 성전 외부를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눅 21: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1세기 역사학자인 요세푸스는 당시 성전에 사용한 대리석의 크기를 기록해 놓았는데 대리석 하나의 크기가 최대 45(long) x 5(high) x 12 cubits(wide)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단위를 feet로 바꾸어 보면 67 feet x 12 feet x 18 feet의 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남편을 잃은 가난한 여인의 전 재산까지도 잘못된 가르침으로 헌금하게 하였고, 그 헌금을 이용해서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성막 또는 성전은 어떠한 장소이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세우신 성막의 모습으로부터 생각해 보면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거하실 성소입니다(출 25:8).
(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그러므로 출애굽기 33장 9-11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막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백성들을 함께 만나셨을 때에 그 장소를 회막이라고 불렀는데,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회막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백성들에게 임하여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난 후에 자신이 지은 성전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모실 수 있을까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하늘과 땅도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인 솔로몬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에서 기도 할 때에 그 기도를 들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왕상 8: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솔로몬이 성전의 목적을 기도의 집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1장 17절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고 계신 “기도의 집”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동일한 내용을 이사야서 56장 7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 56: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라고 언급하였을 때에 성전은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기쁨을 누리는 장소이고, 하나님께 올바른 제사와 제물을 드리는 장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도둑의 소굴’로 바뀌었다고 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전에 거하실 수 있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도 예레미야 7장 9-11절의 말씀을 통하여 악을 행하면서 성전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자들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렘 7: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렘 7: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렘 7: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결과적으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 붕괴를 예언하고 계십니다.
(막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외형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AD 70년 로마 황제 티투스의 공격에 의해서 무너졌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 가운데에서 예루살렘 성전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의 탐욕에 의해 성전을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미기 위해서 잘못된 헌금을 강조하면서 강도의 소굴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 성전은 붕괴되었지만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사건 위에 세워진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에베소서 1장 23절에서 고백합니다.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불러냄을 받은 자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교회(ἐκκλησία)는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믿고 거룩해진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하는 집”을 만들어 간다면 교회는 거룩해진 성도들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