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2일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5:21-34
제목: 참된 믿음은 확신과 신뢰입니다.
마가복음 5:21-43절의 내용을 보면 두 가지 사건이 서로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A 막 5:21-24: 회당장 야이로의 요청 (딸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B 막 5:25-34: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고치심을 받는 사건
A´ 막 5:35-43: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심
이러한 구조를 성경 신학자들은 하나의 사건에 다른 사건이 삽입되어져 있는 삽입 구조(intercalated structure)라고 부르기도 하고, 양 쪽의 빵 사이에 토마토, 햄, 치즈와 같은 식재료를 넣고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샌드위치 구조(sandwiched structur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시는 사건을 처음과 끝에 기록하면서 그 사이에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의 치료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의 사건을 통하여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우리들에게 알려 주고자 함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두 번의 시간을 통하여 마가복음 5:21-43절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는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의 치유 사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라사 지역의 군대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시고 나서(막 5:1-20) 갈릴리 호수 맞은편 동쪽으로 건너 가셨습니다. (막 5:21)
아마도 이 지역은 회당이 있고,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딸을 죽음에서 일으키시면서 아람어인 “달리다굼”(ταλιθα κουμ)을 사용하시는 것으로 보아서 갈릴리 호수 동쪽 지역에서 유대인들의 비중이 더욱 큰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을 고쳐 주시는 사건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가에 계시는 시점에서 시작이 됩니다.
오늘 본문 22절의 말씀을 보면, 회당장 중에 한명인 야이로(Ἰάϊρος)가 예수님께서 나와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회당장이라는 직함에 맞게 행동했다고 하면, 야이로가 예수님 앞에서 한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이로’라는 이름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행동이 이해가 됩니다.
야이로의 이름의 의미는 “교화하다, 계몽하다”(to enlighten)라는 의미와, “일깨우다”(to awaken)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린 행동은 그 자체가 사람들을 교화하고 깨어나서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야이로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습니까?
본문 23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막 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회당장 야이로의 간청의 내용을 보면, 야이로의 딸의 상황과 예수님께 요청하는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먼저, 야이로의 딸의 상황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회당장이라는 직함을 생각해 보면, 야이로의 딸은 의사의 치료를 받지 못해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딸을 치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야이로의 딸을 치료하지 못했고 죽음은 야이로의 딸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야이로가 예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자신의 딸에게 손을 얹으셔서
둘째, 자신의 딸이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야이로가 예수님께서 자신의 딸에게 손을 얹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권위 있는 치료자의 행동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구원을 받아 살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두 단어가 하나의 의미(hendiadys)를 가지고 있는 치료의 표현입니다.
이렇게 회당장 야이로의 요청에 의해서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마가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이 고침을 받는 사건을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치유 사건 중간에 삽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샌드위치 구조라는 용어를 이해하고 있으므로, 샌드위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열 두 해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이 어떻게 고침을 받았는지 이해하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실까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는 한 여인은 갈릴리 호수 동쪽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12년 동안 고생과 더불어 치료를 해 보았지만 그 증세가 더 나빠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여인은 가지고 있는 재산도 다 허비하였습니다.
당시 의술이 발달되어져 있지 않던 상황에서 여인이 혈루증을 앓고 있다는 것은 구약의 율법에 의해서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의미합니다.
레위기 15:19-33절의 말씀을 보면,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과 그 주변의 사람들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장기적인 유출로 불려지는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있을 경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의 침상과 그가 앉은 모든 자리도 부정합니다.
그러므로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의 침상이나 옷 가지나 어느 것이나 만진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 하고, 부정은 저녁까지 지속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에서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의 경우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문화였는데 지금 이 여인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동하시는 가운데에서 큰 무리가 따르고 있는 상황 가운데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끼어 들어온 것입니다.
(막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특별히 마가는 이 상황을 “끼어 뒤로 와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혈루증 앓던 여인이 끼어 들어왔다는 표현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사건에 혈루증 앓던 여인이 끼어 들어와서 사건의 중심이 되었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면 이 여인이 사건의 중심이 되었을 때에 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본문 27절 말씀을 다시 보면, “그의 옷에 손을 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진 행동은 어떠한 믿음에서 한 것입니까?
(막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구원을 받으리라”는 표현은 회당장 야이로가 자신의 딸이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라고 표현한 것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곧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건 행동을 했고, 치유 받았습니다.
(막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 치유를 받은 여인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한 마디가 이 여인을 두렵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막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만일 자신의 행동이 드러나게 되면,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율법에 따라서 이 여인과 접촉이 된 사람들은 저녁까지 부정해 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옷을 빨고 몸을 씻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자신의 정체를 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큰 무리 가운데에서 자신의 능력이 나간 걸 아시고 이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두려워 떨며 와서 자신에게 이루어진 치유의 사건을 예수님께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떨고 있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께서는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에게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접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바라 보시는 것은 자신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떨고 있는 여인에게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믿음은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의 지식으로 제한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일들에 관한 확신 가운데에서 나오는 신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던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은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들의 삶에도 함께 있기를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