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5일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6:30-34
제목: 누가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받습니까?
요한 마가와 세리 마태는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막 6:30-44; 마 14:13-21)과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막 8:1-10; 마 15:32-39)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눅 9:10-17; 요 6:1-14)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떡’이라는 표현보다는 ‘보리떡’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익숙한데, 그 이유는 요한복음 6:9절에서 언급되어진 “보리떡 다섯 개”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마가와 마태는 왜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을 두 번 모두 기록하고 있고 누가와 요한은 하나의 사건만을 기록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먼저 마가와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께서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은 지리적으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은 유대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이방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마가와 마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불쌍히 여기시는 모습을 공동체에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누가의 신학적 특징 중에 하나는 같은 사건의 반복을 피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도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을 유월절이 가까운 시간에 배치하면서(요 6:4), 예수님의 행적을 첫 번째 예수님의 청중에 집중해서 기록하기 보다 요한 복음을 읽는 자신의 독자들인 2 세대의 유대인 기독교인들로 한정하면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오늘과 다음 주일로 두 번 나누어서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예수님의 긍휼하심에 집중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중심으로 마가복음을 생각해 보면, 갈릴리 호수를 꾸짖어 파도를 잠잠하게 하신 사건(막 4:35-41)과 거라사 지역의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하게 하신 사건(막 5:1-20)은 이방인 지역에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리고 샌드위치 구조 안에서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신 사건과 열두 해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을 고쳐 주신 사건(막 5:21-43)은 유대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마가는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시는 사건과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 사이에 세 가지 사건(6:1-29)을 추가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배척 당하심 (6:1-6)
(2)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심 (6:7-13)
(3) 세례 요한의 죽음 (14-29)
오늘 본문 30절의 말씀을 보면, 전도 여행을 떠난 제자들이 다시 돌아와서 예수님께 전도 보고를 하고 있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6: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회개의 복음을 전하면서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는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서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수님께 돌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쉼을 허락해 주셨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배를 타고 외딴 곳에 갔지만, 무리들이 예수님께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여러 마을에서 달려 나와 예수님과 제자들보다 먼저 도착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지역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의 시작을 보면,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입니다.
(막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병자들과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마가복음에서 병자들과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는(σπλαγχνίζομαι) 예수님의 마음이 네 번 기록되어져 있는데, 마가복음 1:41절에서 나병 환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모습과 예수님께서 거라사의 군대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시고 나서 이 사람이 온전하게 되어서 예수님을 따르려고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거라사의 군대 귀신 들린 자에게 하신 말씀으로,
(막 5:19)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번이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과 사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6:34절 말씀을 다시 보면,
(막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이유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같아서입니다.
이 표현은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대신하여서 여호수아를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모세의 가나안 입성이 므리바에서 물을 내는 사건(민 20:1-13)으로 인하여 거절 되었을 때에 모세의 간구에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민 27: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면 목자를 찾은 양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그 모습은 시편 23편에 기록되어져 있는 다윗의 시의 모습입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은 예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하심을 예수님을 통하여 실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목자가 되시면 언약의 축복을 언약의 백성들이 받게 되는데 바로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의 복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 1:23)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보고 왔을 때에 그들에게 영적 양식뿐만 아니라 육신의 양식을 주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온 것은 시편 34편 8-10절 말씀을 통하여 적용해 보면,
첫째, 예수님께 피하는 자 (시 34:8)
둘째, 예수님을 경외하는 자 (시 34:9)
셋째, 예수님을 찾는 자 (시 34:10)
는 긍휼하심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언급하고 그 내용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9장 11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이야기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마가복음 1장 15절의 말씀을 근거해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회개의 복음을 전하셨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회개하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경험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예수님을 찾는 자가 되어야 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기적을 경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