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6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설교
본문: 시편 1:4-6 (p. 805)
제목: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봅니다.
오늘은 시편 1편의 네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가 시편 1편의 말씀을 읽어 가면서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고 있는데, 시인은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을 악인과 비교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자들의 삶의 방법을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악인들과 죄인들을 (1)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2)인정하지 않는 교만한 자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고, 오만한 자들이란 입술로 하나님을 비웃고 악한 말과 폭언을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복 있는 사람이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들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으로서 토라는 모세 오경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으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은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간절함으로 내는 소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하루 종일 주의 의를 말하고,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복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meditating)하고, 그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praying)하며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씨름(wrestling)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시인은 복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는 이유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여호와를 의지하며 의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로 비유되어져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면서 살아갈 때에 그 삶은 열매를 맺는 삶 곧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4절 말씀을 보면, 복 있는 사람과 반대로 악인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1: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우리가 히브리 시의 세 박자 리듬(rhyme)을 살려서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라는 표현을 번역하면 “악인들은 결코 그렇지 아니함이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악인들은 결코 그렇지 아니함이여”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로 3절의 말씀입니다.
악인들은 시냇가에 뿌리를 내리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므로 철을 따라서 열매도 맺지 못하고, 형통한 삶의 복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악인들의 삶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갑니까?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겨’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알곡을 찧어 벗겨 낸 껍질을 의미합니다.
고대 근동 팔래스타인 지역에서 서풍이 불 때에 알곡은 모으고 쭉정이와 겨는 바람에 날려 태워 버렸습니다.
시편 35편 5-6절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찾는 자들을 향하여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라고 간구하고 있고, “그들의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며”라고 간구하고 있는데,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겨’는 악인들을 의미하며 다윗은 악인들을 지옥에 던져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동일한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마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그러므로 악인들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죄인들이 의인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시 1: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서 악인들과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 곧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하면, 악인들은 스올 곧 지옥의 구덩이에 빠져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시 9: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시 9:17)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시인은 본문 6절의 말씀에서 시편 1편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시 1: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편에서 최종적인 종착역인 6절의 말씀을 통하여 의인의 삶의 결과와 악인의 삶의 결과를 알게 되어집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십니다. ‘인정하다’는 히브리어 동사 ‘야다’(יָדַע)는 ‘알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인데, 하나님께서 복 있는 자들 곧 의인들의 삶을 깊은 감정적 유대와 공감, 친밀감을 가지고 알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의인의 관계는 언약의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로 상호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으로서 복 있는 사람을 인정해 주신다고 하면, 복 있는 사람의 최종적인 목적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옵니까?
시인은 “악인들의 길을 망하리로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길이 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악인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악인은 하나님과의 언약적 상호 관계가 깨져 있기 때문에 악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인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쭉정이가 되어서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겨와 같습니다.
우리들은 시편 1편의 말씀을 4 주 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은 의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의인과 악인의 삶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고 있다고 하면 우리들의 신앙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의지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시 33:6)라는 신앙 고백이 우리들의 입술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자신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신 26:18).
예레미야 2장 13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언급하고 있는 악이 무엇입니까?
바로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고, 말씀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씨름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이 사시사철 흐르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하나님과 말씀을 통하여 소통하고, 말씀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 받아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결과 무엇이 복 있는 사람의 길인지 악인의 길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시작점은 우리들의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소통을 위한 시작점입니다. 그러므로 죄 가운데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믿고 의롭게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길이 좁은 길이라는 것을 알고도 선택하고 걸아가는 이유는 좁은 길의 끝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제시한 길을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확신하는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함께 기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