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5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설교
본문: 시편 1:1
제목: 복 있는 사람은?
여러분들은 시편 가운데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편이 몇 편이십니까?
이러한 질문에 가장 많은 답변이 시편이 1편과 23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150편의 시편 가운데에서 시편 1편과 23편은 암송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편 1편을 생각해 볼 때에 친숙함을 가지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여러 번 생각해 본 것처럼, 시편은 연대기 순서가 아니라 주제별로 나누어서 5권으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5권으로 나누어진 시편은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나누어져 있습니까? 바로 모세 오경의 각 권의 주제에 따라서 나누어져 입니다.
시편의 1권이 모세 오경 중에서 창세기의 주제를 따르고 있다고 하면, 시편 1편의 내용은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길을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편 1편은 제3권의 시작인 시편 73편과 함께 대표적인 지혜의 시입니다.
그러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시인은 본문 1절의 말씀을 통하여 복 있는 사람(אַ֥שְֽׁרֵי־הָאִ֗ישׁ)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시편에서 복 있는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우리가 시편 128편 1절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는 말씀입니다.
‘경외하다’(יָרֵא)는 히브리어 동사는 ‘두려워하다’라는 의미와 ‘경외하는 모습으로 서다’라는 의미가 복합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된 지혜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들은 참된 지혜를 깨닫고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참된 지혜를 깨달은 복 있는 사람이 피해야 할 세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참된 지혜를 깨닫고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은 세 가지 잘못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입니다.
첫째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들은 성경에서 악인이 누구인가를 정의해 보아야 합니다. 시인은 복 있는 사람의 반대말로 악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 정의해 보면, 악인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복 있는 사람들이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라고 하면, 악인이란 하나님의 율법을 가까이하지 않고 지키지 않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세는 그 원인을 교만으로 정의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십 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면서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합니다(신 8:2).
첫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기 위함입니다(신 8:2b).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사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신 8:2c).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내게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신명기 8장 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메시지가 신명기 8장 14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신 8: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결과적으로 교만이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시작점이 되고,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악인이 되는 시작점이 됩니다. 그 이유는 교만하여서 피조물인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악인의 꾀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유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두번째로,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가 언급하고 있는 죄인의 길이란 어떠한 길 입니까?
먼저 죄인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시인이 사용하고 있는 죄인이라는 단어는 악인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시편 7편 14절의 말씀을 보면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시편 7편의 문맥에서 보면 악인이란 회개하지 않는 자입니다(시 7:12).
그 결과 악인은 마음 속에 있는 욕심을 자랑하여서 탐욕을 부리고 여호와를 배반합니다(시 10:3). 그리고 악인은 죄인이 되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시 10:4).
(시 10: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그러므로 죄인의 길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길입니다.
이사야서 1장 24-31절의 말씀을 읽어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로 가득 찬 성읍 가운데에서 시온을 회복 시키는 모습이 기록되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로 구속하실 때에 하나님의 구속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패역한 자들이고, 죄인이고, 여호와를 버린 자들입니다(사 1:28).
그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을 때에 잎사귀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고 물 없는 동산 같을 것입니다.
세번째로,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들이라는 히브리어 명사는 말의 이미지와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오만한 자’는 본래 ‘말을 함부로 하다’는 동사에서 ‘수다쟁이, 허풍쟁이’라는 명사가 형성화 되면서 ‘오만한 자, 조롱하는 자’의 의미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면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시편 73편 8-11절의 말씀에서 생각해 본 것처럼, 오만한 자들은 언제나 남을 비웃고, 악한 말을 하고, 폭언을 하고, 입으로는 하늘을 대적하면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을 합니다(시 73:8-11).
그러면 오만한 자들은 왜 이렇게 행동을 합니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 판단과 종교적 분별력을 잃어버려서 교만해지고, 교만에 취해서 하나님마저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들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다윗은 시편 26편 3-4절에서 “주의 진리를 따라 행동하는 자들은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않지 않고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은 복 있는 사람과 대조되는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자들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은 복 있는 사람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편 1편을 기록하고 있는 시인 또한 복 있는 사람은 단수로 기록하고 있고,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자들은 복수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하여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자들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13-14절에서 언급하고 계신 것처럼 좁고 비좁아서 찾는 자들이 적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믿음의 길, 복 있는 사람의 길을 걸어가시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