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이스라엘이 버린 것과 선택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8:5-8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사야서 8장에서 진행이 되고 있는 임마누엘의 징조는 이사야의 두 번째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의 탄생과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이 아이가 아빠, 엄마를 부르기 전에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장면으로 계속되어집니다.
(사 8: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아람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이스라엘 왕 베가)을 기뻐하느니라
우리들은 본문 6절에서 해석적인 난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왜내하면 이사야서의 다른 본문들에서 “이 백성”의 대부분의 표현은 남 유다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6:9; 8:12; 9:15[개역개정 16], 28:11,14; 29:13).
그러나 본문에서 “이 백성”이 남 유다를 지칭한다고 하면 그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아람왕 르신과 북 이스라엘의 왕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를 기뻐한다는 것은 의미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이 백성”은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그러면 북 이스라엘이 버린 것과 선택한 것은 무엇입니까?
북 이스라엘이 버린 것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이고 선택한 것은 아람왕 르신과 북 이스라엘의 왕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가 연합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실로아의 물”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다윗은 실로아의 근원인 기혼에서 자신의 정권을 솔로몬에게 넘겨 주었습니다(왕하 1:33-34) 이 모습을 통하여 실로아의 물은 다윗의 왕조를 상징합니다.
둘째, 기혼에서 시작되어진 실로의 물은 예루살렘의 식수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요새이므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면 가장 취약한 장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기혼에서 시작된 실로아의 물이 예루살렘에 흐르는 것은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보호하심을 상징합니다(사 22:11).
북 이스라엘은 실로아의 흐르는 물을 초라하다고 생각하고 아람과 연합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 8:7)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북 이스라엘이 실로아의 물을 버린 결과는 유프라테스 강으로 상징되어지는 큰 하수 곧 앗수르 왕의 공격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실로아의 개울물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을 상징한다면, 유프라테스 강으로 상징되어지는 큰 하수 곧 앗수르 왕은 커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 10:5)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세상의 시각에서 바라본 유프라테스 강은 엄청난 위력으로 북 이스라엘을 뒤 덮고 모든 골짜기에도 차고 언덕에도 넘쳐 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강물은 흘러 넘쳐 이 강물을 부른 남 유다의 땅도 삼켜 버려서 바듯이 살아 남도록 목까지 차 버렸습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남 유다의 백성들을 보호해 주시고 계십니다.
(사 8: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사람의 시각으로 보이는 것으로 선택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들은 보이기에 연약한 것을 선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강자의 편에 서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삼위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하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이 아니라 본질입니다. 실로아의 개울물이 작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세상의 강함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눈에 보이는 힘을 쫓아 살아가면 그 힘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가 살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