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6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예배
본문: 요한복음 20:19-23
제목: 성령을 받으라
공관 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와 다르게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의 빈 무덤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을 베드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공관 복음서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여인들이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 무덤에 도착하였을 때에 무덤의 돌이 굴러져 가 있었고, 여인들은 무덤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께서 누워 계셨던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마 28:6; 막 16:5; 눅 24:3).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 혼자 예수님의 무덤에 도착하여서 무덤을 막고 있었던 돌 무덤이 옮겨진 보고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요 20:1-2a). 마리아는 예수님의 열 한 제자 가운데에서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다른 제자 사도 요한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리는 장면으로 부활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요 20: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까지 달리기 시합이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가 이 달리기 시합에서 이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도 요한은 짓궂게도 자신이 먼저 무덤에 도착했다고 요한복음 20장 4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 20: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그러나 담력은 사도 요한보다 나이가 많은 베드로가 더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도 무덤에 들어가서 예수님께서 무덤 안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 20: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런데 우리가 궁금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도 요한도 무덤에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고 표현되어져 있는데 요한은 무엇을 믿었는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요한 공식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고백하는 장면은 디베랴 호수에서 물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사도 요한의 고백입니다(요 21:7))
요한복음 20장 9절의 말씀을 근거해서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과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을 믿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요 20: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날 저녁 곧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난 후에(요 20:11-18),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모습이 본문 19-23절의 말씀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빈 무덤을 보았던 베드와 요한을 중심으로 다른 제자들이 어떠한 모습 가운데에 모여 있습니까?
바로 두려움 가운데에서 모여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삶을 통하여 부활에 관하여 배웠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뛰어 넘는 부활에 관하여 믿고 깨닫지 못해서 두려움 가운데에서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1-44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일으키시는 기적을 통하여서도 부활에 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요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현실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 두려움 가운데에서 자신들이 모인 장소에서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우리들은 두려움의 반대말로 평강(εἰρήνη)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평강이라는 히브리어 명사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샬롬”(שָׁלוֹם)입니다. “샬롬”이란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의 관계에서 언약의 백성들이 순종하였을 때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샬롬을 말씀하시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 5장 1절의 말씀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통하여 우리가 의롭게 되어졌을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지신 고통으로 받은 상처인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면서 다시 한번 평강을 말씀하시고 예수님의 평강을 전하는 복음의 사역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는 곳마다 평강 곧 샬롬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어떠한 역사가 이루어집니까? 바로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평강을 선포하시고 나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우리들은 성령의 역사를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임마누엘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임할 성령의 역사를 말씀하십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약속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우리들에게 구원자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마 1:23)의 증표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임마누엘의 예수님의 사역을 성령께서 대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으로 충만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이 충만한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에 나타나는 현상이 죄 용서함입니다.
(요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죄 용서함의 권한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마 16:16)라는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에 천국의 열쇠(마 16:19)를 주신 것 처럼,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모임 곧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예수님의 죄 사함의 권세가 실현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을 믿는 성도들의 삶은 성령이 충만한 삶이고 이러한 성도들이 모여서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