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재판
이사야 41:1-7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사야서 40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평과 불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유수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들이 열방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열방이 하나님 앞에서 작은 물방이나 티끌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삶은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 새 힘을 얻게 되어서 곤비하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41:1-42:13절의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의 주관자가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장장이와 도금장이가 만들어 놓은 우상을 섬기는 모습은 어리석은 삶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법정에서 펼쳐지는 재판으로 시작이 되어집니다.
(사 41: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고 말하라 우리가 서로 재판 자리에 가까이 나아가자
이사야 선지자가 언급하고 있는 “섬”들은 세상의 끝을 상징하는 의미로 온 세상의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정에 모든 민족들이 불려 오고 있는데,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결과적으로 그들은 우상으로부터 힘을 얻으려고 하는 잘못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본문 6-7절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열방을 하나님의 재판의 자리에 부르신 이후에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말씀합니다.
(사 41: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워서 공의로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냐 열국을 그의 앞에 넘겨 주며 그가 왕들을 다스리게 하되 그들이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사 41:3) 그가 그들을 쫓아가서 그의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사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동방에서 누구를 일깨우신 것입니까?
초대 교회의 기록들을 보면 아브라함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의 학자들은 이사야서 44:24-47:15에 기록되어져 있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으로 생각합니다.
주전 539년에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였을 때에 바벨론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정부가 부패해 가는 모습에 염증이나서 스스로 문을 열어서 고레스 왕을 환영하였습니다.
그 결과 주전 538년 3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끌려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자유를 얻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열방들은 아무런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사회에서 유다는 작은 나라에 불과한데, 유다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라는 사실은 열방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열방들은 두려워하며 떨고 있고, 서로를 향해 힘을 내라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상에게 힘을 구하는 모습입니다.
(사 41:5)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사 41:6)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힘을 내라 하고 (사 41:7) 목공은 금장색을 격려하며 망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을 격려하며 이르되 땜질이 잘 된다 하니 그가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을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는도다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 모습입니까? 스스로 설 수도 없는 우상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삶은 어리석은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서 역사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