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죄악의 길로 빠져드는 첫 걸음입니다
이사야 13:11-16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 장비 문제로 휴대폰으로 녹화를 하여서 Quality가 떨어졌음을 양해 부탁 드립니다.
열방들을 향한 심판의 시작에서 바벨론의 교만을 생각해 보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삶에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합니다.
교만의 결과가 소망이 없는 고통을 가져오고, 빛이 사라진 상태에서 어두움 속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자연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별과 해와 달을 우상으로 섬기려는 모습도 빛이 사라지면서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본문 11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13:11)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본문에서 교만한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벌하신다는 히브리어 동사(פָּקַד)의 본래적인 의미는 “방문하다, to visit”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방문하시는 날이 곧 교만한 자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우리들은 이사야서 13장 9절에서 여호와의 날에 자연이 파괴되어지고, 죄인들이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존재하는 악과 악인의 죄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입니까?
교만과 오만과 거만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모세의 메시지로 생각해 보면 교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고 죄악의 길로 빠져 들어가는 첫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신 8: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결과적으로 바벨론에게 교만의 죄는 우상을 섬기는 죄로 빠져 들어가 타락의 길로 걸어가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7-8장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7:20절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하여서 우상에 빠지는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겔 7:20)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말미암아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만들었은즉 내가 그것을 그들에게 오물이 되게 하여
결과적으로 바벨론 백성들의 교만은 멸망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오빌이라고 불리는 금으로 유명한 지역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데, 의인 한 사람을 찾는 것이 순금보다 더 희소하게 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13:12)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마치 아브라함이 소돔 땅에서 의인 10명을 찾는 모습이 재현되고 있습니다(창 18:16-33).
교만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창조의 근본적인 틀이 하늘과 땅을 흔드는 모습입니다.
(사 13:13)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14-16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을 때의 참혹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순금 찾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고 계신데, 이것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바벨론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판을 받게 되고, 심판의 모습은 너무나도 참혹합니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과 여성까지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알게 되어집니다.
특별히 14절의 말씀을 읽고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사 13:14)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 같이 각기 자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각기 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노루는 사람을 보면 도망가는 동물이고, 양은 목자를 잃으면 흩어지는 동물입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보고 도망가고, 어떤 이들은 목자로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흩어지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이 작은 죄인 것 같지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아주 심각하게 다루십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늘도 믿음 안에서 살아가시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