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의 끝은 사람들의 조롱입니다
이사야 14:3-8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하나님께서 열방들을 향한 심판 가운데에서도 언약의 공동체인 야곱의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을 때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본문 3절의 말씀을 보면 “안식을 주시는 날”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 14: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본문 3절의 말씀을 다시 보시면, 안식을 받기 이전의 모습은 “슬픔”과 “곤고”와 “수고하는 고역” 입니다.
“안식을 주다”는 히브리어 동사 “누하”(נוּחַ)의 여러가지 의미 중에서 본문에서 사용이 되어지는 의미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허락해 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자유를 허락해 주시는 주체는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슬픔과 곤고와 수고하는 고역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바로 인간의 죄입니다.
특별히 이사야 선지자는 야곱의 족속들의 우상 숭배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2장 5-22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여호와의 날에 우상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2장 20절 말씀을 보면,
(사 2:20)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구약의 율법에 가장 부정한 동물인 두더지와 박쥐(레 11:19)에게 우상을 던져서 깨끗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사야서 27장 9절의 말씀에서도 야곱의 족속이 불의를 용서함을 받는 방법은 우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사 27:9)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이렇게 야곱의 족속이 안식을 얻는 날에 바벨론의 왕은 어떠한 고통에 처하게 되어집니까?
이사야서 14장 4절 중반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은 히브리어의 시로 표현이 되어져 있습니다.
많은 구약의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히브리 시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히브리어로 읽어 보면 단어의 숫자와 소리의 리듬까지 맞추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시의 처음(4b-8)과 끝(16-21)을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고, 그 중간(9-10; 11-15)에 스올(지옥)에서 이루어지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절 중반절에서 8절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로 바벨론 왕의 죽음입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슬픔의 날입니다. 만일 어떠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기뻐한다고 하면, 이러한 삶을 살아간 자는 바르지 못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과 8절의 말씀을 보면 두 번이나 즐거워하는 모습이 기록되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바벨론 왕의 죽음입니다.
(사 14:7) 이제는 온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니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도다 (사 14:8) 향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도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가 넘어져 있은즉 올라와서 우리를 베어 버릴 자 없다 하는도다
본문 4절의 바벨론 왕은 “압제하던 자”로 표현되어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악인의 몽둥이로서 바벨론 왕의 규(지팡이)를 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14:5)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
결과적으로 바벨론 왕의 분냄으로 인하여 여러 민족이 억압을 당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왕을 꺾으셨고, 억압을 당하던 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독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 할 때에 교만의 끝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