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감을 움켜쥔 사자처럼
이사야 31:3-5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푸셔서 올바른 길을 제시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남 유다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 남 유다의 백성들은 애굽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남 유다가 애굽과 화진을 맺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앗수르에 대항하여서 애굽이 가지고 있는 군마와 병거와 기마병의 막강한 힘을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남 유다는 애굽이 라합이라는 바다 괴물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모습이 허풍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을 보면 남 유다의 이러한 생각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사 31: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이사야 선지자가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남 유다는 애굽을 신(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애굽의 군마를 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3절에서 사용이 되어지는 신이라는 단어는 ‘אֵל’이고, 영은 ‘רוּחַ’입니다.
이 단어들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언약의 백성이라고 불리우는 남 유다가 애굽을 향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손을 펴셔서 돕는 애굽과 도움을 요청하는 남 유다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3절의 말씀을 통하여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것입니까? 사람을 의지할 것입니까?
영을 선택할 것입니까? 육을 선택할 것입니까?
이사야서 31장 4-5절의 말씀을 보면 두 가지 은유를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해 주실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4절의 말씀에서는 먹이를 움켜쥔 사자의 은유이고, 5절의 말씀에서는 새끼를 보호하는 새의 은유입니다.
이 두 가지 은유는 절대적인 방어의 이미지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 3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
(사 31:5) 새가 날개를 펴고 둥지의 새끼를 보호하듯이, 만군의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신다. 감싸 주고 건져 주며, 다치지 않게 뛰어넘어서, 그 도성을 살리신다.
먼저 4절의 말씀에서 먹이를 움켜쥔 사자가 먹이를 빼앗기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필사적으로 싸우셔서 시온 성을 지켜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5절의 말씀에서는 어미새가 새끼들이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위험을 무릎 쓰고 새끼들을 보호해 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의 선택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세상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이 살 길입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