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팔이요 깨소서
이사야 51:9-11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이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들이고,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로서 “하나님의 의를 아는 자들이고, 하나님의 율법을 새긴 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언약의 백성들의 삶을 살아가게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가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들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고, 모든 환경 가운에서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영원히 세우시고, 구원을 세세에 미치시기 때문에 세상의 비방으로부터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네번째 고난의 종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52장 13절의 말씀 전까지 여호와의 팔이 구원을 이룰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들은 51:9-52:12절의 말씀에서 “깨어나라, 깨어나라”라는 표현이 세번(51:9,17; 52:1) 반복하여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첫번째 “깨어나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져 있고, 두번째와 세번째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먼저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고 있는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면서 외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 51: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의하라는 말씀을 지속적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에 반응하여서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호소는 고난의 풀무 불로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규의 탄원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이사야서 30장 7절의 말씀을 통하여 고대 근동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바다 괴물 ‘라합’을 생각해 보았는데, 라합은 세상의 질서와 균형을 파괴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가 고대 근동 신화의 내용을 인용해서 여호와의 팔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전 750년경 이후부터 성경의 내용은 반 신화적인 내용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선지자는 ‘라합’이라는 고대 근동 신화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고대 근동 지역에 잘 알려져 있는 신화적인 이미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고대 근동 사회에서 ‘라합’이 애굽을 상징하고, ‘용’이 애굽의 왕을 상징하고 있다는 문학적 내용을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의 사건과도 연결해서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다시 한번 본문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여호와의 팔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구는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신 구원자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표현되어져 있습니다.
(사 51: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이러한 출애굽의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현되어진다고 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구속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사 51: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결과적으로 이사야 선지자가 35장 10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여호와의 속량을 얻은 자들의 찬양 소리와 동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팔을 의지하여서 간구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