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환상에서 벗어나라
이사야 22:1-2a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사야서 13-23장까지 열방들을 향한 심판이 언급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22장에서는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열방들을 향한 심판 가운데에서 22장에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이 기록되어져 있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2장에 기록되어져 있는 예루살렘 백성들의 모습은 이성적으로 지극히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서 다가오는 심판도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이 그 어떠한 요새나 군대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열방들을 향한 심판 가운데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의 내용을 22장에 기록하는 이유는 열방에 비해 예루살렘이 특별한 모습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은 열방과 동일한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예언의 메시지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22:1-14 (자부심이 가득찬 도시)
22:15-19 (독행하는 셉나)
22:20-25 (사람을 의지하는 엘리아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예언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는 것에 관한 심판의 내용입니다.
1-14절의 배경에 관한 논쟁들은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주전 701년 산헤립의 침략의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주전 711년에 앗수르가 아스돗을 침략할 때의 상황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본문 1절에 시작되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은 현재의 의심스러운 기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 22:1)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찌함인고
먼저 본문에 등장하는 “환상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을 비꼬는 표현입니다.
예루살렘은 시온 산으로 자주 묘사 되는데 시온 산은 북방의 산들 중에서 으뜸인 산으로 이 산을 보고 모든 열방들이 모여 듭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등장하는 예루살렘은 환상을 전혀 볼 수 없는 골짜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은 ‘골짜기’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바로 시편 23편 4절 말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라는 표현은 인생의 어려운 순간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가 “환상의 골짜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시온산의 높은 정상이 아니라 깊은 골짜기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데 환상을 보고 있다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고 있는 환상의 내용도 잘못되어져 있습니다.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찌함인고”라는 표현에서 “네가”는 예루살렘 도시를 의미합니다. 이사야서 15:3절의 말씀을 보면 지붕은 통곡의 장소입니다.
(사 15:3)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그러나 본문에서 지붕이 기쁨의 장소로 표현되어지는 것도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그리고 본문 2절 상반절에서 “소란스럽고, 떠들고,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사 22:2)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나라가 위기를 맞은 순간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골방에 들어가서 회개와 통곡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전쟁 앞에서 적군이 도망갔다는 잘못된 환상을 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 좋은 일들이 가득할 때, 혹시 우리가 우리들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했다는 잘못된 비전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자신들의 연약함을 철저히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