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이사야 19:11-15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열방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에서 애굽을 향한 심판은 애굽의 백성들의 우상 숭배의 심판에서 시작이 되어서 사회적 붕괴(19:2-4)와 경제적 붕괴(19:5-10)로 이어졌습니다.
한 국가가 우상을 섬기면서 멸망해 가는 모습을 우리들은 애굽을 통하여 생각해 보고 있는데, 사회적 붕괴와 경제적인 붕괴 이후에 애굽이 직면한 문제는 정치적인 붕괴입니다.
지금 애굽의 지도자들이 바른 정치를 한다고 하면 그들은 무너져 버린 사회의 구조와 경제를 체계화 하여서 백성들을 어려움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도록 돕은 역할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정치 지도자들은 지혜를 내지 못하고 어리석고 우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 19:11) 소안의 방백은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은 우둔하여졌으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
“소안의 방백들”은 애굽의 나일 델타의 동쪽에 위치한 Tanis 라는 지역에서 정치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어리석은”이란 히브리어 형용사의 의미는 지혜와 지식을 멸시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방백들의 주된 역할이 지혜와 지식을 찾는 것인데, 소안의 방백들이 지혜와 지식을 멸시한다는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모습이 잠언 1장 7절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또한 가장 지혜로워야 할 바로의 참모들의 책략은 우둔해 졌습니다.
“우둔한”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형용사는 “바알”(בָּעַר)은 격식을 갖춘 번역이고 히브리 언어의 개념은 “짐승과 같은”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사람에게 적용해 보면 “상스러운, 교양이 전혀 없는”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에서 지혜로운 자를 찾고 있습니다.
(사 19:12)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말할 것이니라
만일 지혜로운 자가 있다고 하면, 그들은 참된 지혜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지혜로운 자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애굽의 지도자들의 지혜 없음을 강조합니다.
(사 19:13)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 그들은 애굽 종족들의 모퉁잇돌이거늘 애굽을 그릇 가게 하였도다
놉은 과거에 통일된 애굽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Tanis와 쌍벽을 이루는 주요 도시입니다.
결과적으로 소안의 방백들과 놉의 방백들은 모퉁이돌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무능력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찾지 않은 결과입니다.
그 결과 본문 14절의 말씀을 보면, 그들은 술에 취해 자신들이 토해 놓은 오물을 밟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입니다.
(사 19:14)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고 하는 남 유다에게 다시 한번 이러한 사실을 언급합니다.
애굽은 아무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
(사 19:15)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우리들은 미가 선지자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외치는 지혜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미 6:9)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