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시작, 사랑의 표현
이사야 57:16-17
김윤규 목사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켜 주시는 모습을 우리들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길을 예비해 주셨을 때에 그 길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악한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해 주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들은 14절에서 ‘거치는 것’이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서 방해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회개하고 겸손한 자를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본문 16-17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거두시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 57:16)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투거나 노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다투다’는 의미는 법적인 소송을 통하여 서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다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은 이사야서 1장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법정에서 토론을 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했다고 말씀합니다.
(사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또한 ‘노하다’는 의미는 내적인 감정이 격해 져서 분노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서 1장 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 자식’ 곧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는데, 1장 24절의 말씀을 보면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내 대적’이 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법정에 서 있는 관계였고, 하나님의 대적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이상 그들과 다투거나 노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 57:16) …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징계를 지속한다고 하면 그들 중에서 살아남을 자들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징계를 거두시는 모습 또한 회복의 시작이고 사랑의 표현입니다.
본문 17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떠한 죄악으로 인하여 분노하고 계셨는지 말씀합니다.
(사 57:17)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탐심의 죄악’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1장의 말씀을 기억해 보면, 탐심이란 사회 윤리적 타락의 모습과 연결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는 피가 가득했고, 악을 행하면서 학대 받는 자들과 고아와 과부의 신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언약의 백성들이 탐심의 죄악에 빠져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얼굴을 가리셨지만, 끝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악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탐심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다고 하면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