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어진 평화
이사야 9:6-7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사야서 9장에서 시작되어지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은 한 아이의 탄생 통하여 이루어질 것입니다.
메시아의 사역은 이 백성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 자들이 괴로움과 굶주림과 환난과 흑암과 고통 가운데에서 큰 빛을 보고 흑암에서 벗어나 영화롭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삶은 출애굽의 기쁨처럼,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의 승리의 기쁨처럼 다가와서 메시아를 통하여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본문 6절에 기록이 되어져 있는 메시아는 임마누엘의 징표로 주어진 이사야의 두 번째 아들의 이름(마헬살랄하스바스)이 네 가지 이름를 가지고 있듯이, 메시아도 네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첫째로, “기묘자라, 모사라”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속의 행위에서 놀라운(פֶּלֶא) 지혜를 가지고 있는 전략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로, “전능하신 하나님”(אֵ֣ל גִּבּ֔וֹר) 이라는 표현을 전쟁에서 승리를 이끄는 하나님의 표현 방식입니다.
이사야 9장 3-5절의 기록을 통하여 초자연적인 모습을 통하여 전쟁에서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듯이 한 아이가 메시아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아이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평화를 가져오는데 그 누구도 의심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세번째로, “영존하시는 아버지” (אֲבִיעַ֖ד) 라고 불릴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왕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이는 인간의 혈통을 가지고 있는 왕의 가문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아닙니다.
또한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아의 아버지시며(시 68:5),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시 103: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마지막으로 “평강의 왕” (שַׂר־שָׁלֽוֹם) 이십니다.
평화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임을 우리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평화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열매라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사 32: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지는 이유가 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아이가 메시아로서 깨어진 관계를 평화의 관계로 회복시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은 메시아를 상징하는 의미로 표현 되어지고 있고, 이러한 통치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고, 영원히 공의와 정의로 그 나라를 세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라고 본문 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메시아를 보내 주셔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삶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지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지는 삶 그 삶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삶입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