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의지할 것인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이사야 21:5-9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사야서 21장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보는 묵시는 선지자로 하여금 혹독한 고통 가운데에 있게 합니다. 바벨론 국가의 안과 밖에서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는 모습을 묵시로 바라보면서 이사야 선지자는 해산하는 여인이 겪는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앗수르의 배신에 의하여 남 유다가 의지하려고 했던 애굽에 이어서 바벨론이 무너지는 모습을 통하여 희망의 새벽 빛이 변하여 두려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가 바라보고 있는 바벨론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사 21: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양탄자를 깔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본문 5절의 말씀은 다니엘서 5장의 바벨론 왕 벨사살의 잔치와 같은 장면입니다.
5절의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보는 바벨론의 모습은 네 가지 장면으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잔칫상을 차려 놓고,
두 번째 장면은 개혁 개정에서 “파수꾼을 세우고”로 잘못 번역이 되어져 있는데 원문은 “양탄자를 깔고”입니다.
세번째 장면과 네 번째 장면은 먹고 마시는 장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잔치가 열려 있는 상황 가운데에서 급하게 전쟁을 준비하는 장면이 기록되어져 있는데 본문 5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라는 표현하고 있지만 전쟁을 준비하기에는 너무나도 늦은 반응입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주전 539년에 고레스가 바벨론을 침략하였을 때에 바벨론의 군사들이 성문을 열고 싸움을 포기하고 고레스를 구세주로 맞이했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바벨론은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부패하였고, 배신자들과 함께 멸망의 길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본문 6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파수꾼을 세워 파수꾼이 보는 것을 보고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수꾼을 세운 위치가 바벨론이 아니라 유다입니다. 유다 주변에 파수꾼을 세워 바벨론의 멸망을 보는 대로 보고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파수꾼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사 21: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더니(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파수꾼의 임무는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때와 낙타를 탄 사람이 오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서 파수꾼은 최선을 다해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이라는 표현은 “사자 같은 힘과 각오로 흔들림 없이 행동한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9절의 마병대는 전쟁을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멸망을 알리기 위해서 옵니다.
(9)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파수꾼이 외치는 모습은 바벨론의 함락과 우상의 몰락입니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바벨론이 멸망해 갈 때에 우상들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상이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형상으로 아무런 힘도 없고 역할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바벨론의 우상을 섬기는 자들도 함께 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우상들이 바벨론도 지키지 못했는데 바벨론을 의지하려고 하는 남 유다나 다른 민족들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가 바라보는 바벨론의 멸망은 유다의 백성들이 어떠한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인생을 의지할 것인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오늘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