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6일 주일 설교 (RWGC)
본문: 마가복음 2:1-12
제목: 죄사함을 이끄는 믿음
사람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성품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상대의 언어로 인하여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평가받기도 합니다.
마가복음 1장 21-45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난 후에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면서 전도 사역에 집중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의 입술을 통하여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24)
(막 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표현은 귀신이 가지고 있는 초자연적인 시각에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고백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이 표현이 ‘하나님의 아들’과 동일한 표현으로 마가의 공동체에 이해되었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열병으로부터 고쳐 주는 사건과(막 1:29-31),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신 사건(막 1:32-34)를 기록하고 나서, 예수님께서 전도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1:38절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는 한 명의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41절의 표현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시는 능력과 권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명성은 널리 퍼졌고, 예수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 가시면서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이 되어집니다.
마가복음 2장 1-12절의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기적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A 2:1-5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
B 2:6-10 서기관들과의 논쟁
A´ 2:11-12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
그리고 우리들은 마가의 기록에서 중요한 변화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마가가 마가복음 1장 21-45절에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사건만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면, 2장 1-12절의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는 사건에서는 병고침이 죄 사함과 연결되어서 기록이 되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가는 이러한 연결을 통하여 서기관들과 예수님의 논쟁을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는 사건의 중앙에 배치하여서 예수님의 기독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마가복음 2장 1-12절의 내용을 읽을 때에 중풍병자와 그를 돕는 친구들의 믿음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죄사함의 능력에 초점을 두고 본문을 읽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마가복음 2장 1-2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의 집에 계시다는 소식이 사람들에게 전해지자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이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도’를 가르치셨다고 2장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헬라어의 본래적인 의미는 ‘로고스’(λόγος)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로고스는 그리스 철학에서 판단을 인도하는 기준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이 되었는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이 되어질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복음’의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데, 이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들에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명성은 갈리리 해변가 지역에서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중풍병자와 네 친구들도 예수님의 명성을 들었고, 예수님께 나아가면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어서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문제는 예수님의 명성으로 인하여 너무나 많은 무리들이 집에 모여 있었기에 네 친구들은 중풍병을 앓고 있는 친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절망과 함께 포기하고 다음의 기회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명의 친구들은 이 상황을 포기하지 않았고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어 중풍병을 앓고 있는 친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가는데 성공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 집들은 지붕에 올라가는 계단이나 사다리가 외부에 있었으므로 네 친구들은 중풍병을 앓고 있는 친구와 함께 지붕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지붕은 진흙과 억새를 이어 만들었기에 지붕에 구멍을 내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우리들은 이 사실을 통하여 믿음은 장애물을 극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만일 네 친구와 중풍병을 앓고 있는 자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면, 이러한 행동을 하였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이러한 일이 가능했고, 예수님께서도 이 믿음을 보셨다고 본문 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우리들은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는 병행 성경 구절인 누가복음 5:17절의 말씀을 통하여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는 표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과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연결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서기관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고, 마음의 생각을 읽고 계신 예수님에 의해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의 1세기에서는 죄와 병의 문제가 밀접하게 연결되어져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상황 가운데에서 이 표현으로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1세기 당시에 죄의 문제에 관하여 금기어가 있었는데, 죄 용서함을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모르는 서기관들에게는 문제가 된 것입니다.
(막 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서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는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므로, 예수님의 표현은 신성 모독에 해당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의 말씀을 보면, 한 여인이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때에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오늘 본문 5절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눅 7: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러자 함께 앉자 있었던 자들이 속으로 말하기를 “이가 누구이게 죄도 사하느가 하더라” (눅 7:49)라고 기록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눅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구원의 문제를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원자이기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의 중심을 아시고 서기관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막 2: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들은 향유 담은 옥합을 깬 여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을 향한 믿음은 구원과 연결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말씀을 “나는 너의 죄를 용서한다”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14번 사용되어지는 ‘인자’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마가복음 8장 31절부터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이 사건과 관련하여서 사용하므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8장 31절 이전에는 단 두 번 사용이 되어지는데, 마가복음 2장 10절과 28절입니다.
(막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그러므로 마가의 공동체가 예수님께서 사용하고 있는 ‘인자’라는 단어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과 연결하여서 읽고 있다면, 인자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막 2: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러자 중풍병자는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걸어서 나갔고, 이를 보고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결국 마가는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누구인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우리들이 믿음의 장애물을 해결하고 예수님께 나아간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이 예수님의 음성을 우리가 오늘 설교를 통하여 들었다면, 믿음은 구원과 연결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는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더 우리들의 믿음이 굳건해 지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