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강해 (33)
참된 제자도: 섬김
마가복음 9:33-37
벳세다에서 예수살렘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참된 제자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인가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에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의 고백처럼 “주는 그리스도이시니이다”(막 8:29)라는 고백 위에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마 16:18).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연약함을 언급하시면서 참된 제자도의 첫번째 세 가지 삶을 언급하셨습니다(막 8:34).
첫째, 자신을 부인하여 죄를 버리는 삶
둘째, 십자가를 짐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
셋째, 예수님을 따라 복음을 전하여 지켜 행하는 삶
결과적으로 이러한 삶이란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고 추구하는 삶이고,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칭찬 받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막 8:35-38).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변화산이라고 부르는 다볼산에서 변형되어지는 모습을 통하여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르치십니다.
(막 9: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그러나 제자들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다볼산에 계실 동안에 다른 제자들(9명)은 예수님으로부터 병을 고치는 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연약하여서 귀신들린 어린아이를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두 번째 제자도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인간의 연약함의 표현이기고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무한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도의 삶 가운데에서 기도의 능력을 가르치시고 나서 두 번째로 갈릴리를 통과하시는 길에서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가르치십니다(막 9:31).
(막 9: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였고,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논쟁 가운데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본문 33-34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막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마가는 가버나움의 집이 베드로의 집인지, 예수님의 집인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첫 번째(막 8:31)와 두 번째(막 9:31)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에 대한 예언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9장 32절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깨닫지도 못하였고 예수님께 질문을 드리는 것도 두려워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집에서 예수님의 질문을 받았다는 사실은 사적 공간인 집에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 무엇인가를 토론(διαλογίζομαι)하고 있었던 모습을 예수님께서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가는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쟁론(διαλέγομαι)하고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서로가 다투면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누가 더 큰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의 모습이 본문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제자들의 관심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을 때에 왕이 되어지면 누가 높은 위치에 앉을까 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두 번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에 관한 예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이해하면서 권력의 힘을 얻고자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에 적용해 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직분은 권력이 아니라 섬김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한 섬김의 종에 불과한 목회자들과 직분을 받은 제직들이 잘못된 리더쉽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를 높이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복음이 가리워지는 것입니다.
사회의 권력 구조에 익숙해져서 있는 교회 공동체가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섬김의 직분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 5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을 버리신 이유가 설명이 되어져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만 있으면 예루살렘 성을 용서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예레미야 5장1절에서 전합니다. 이 사실이 충격적인 이유는 소돔과 고모라의 몰락을 막지 못했던 의인의 숫자 10명이(창 18:16-33) 의인 1명으로 줄었다는 사실입니다.
(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 언약의 백성인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을 때에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렘 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오늘 본문 35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참된 제자도를 어떻게 가르치십니까?
(막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본문 35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제자도의 핵심은 섬김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회의 권력 구조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삶에 적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회의 권력 구조가 하나님의 나라의 권력 구조가 아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마가복음 10장 35-41절의 말씀을 보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께서 영광에 앉으실 때에 왼편에 오른편에 앉게 해달라고 간구했을 때에 다른 10 제자들은 화를 내는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내용 중에서 예수님께서 세상의 권력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설명하는 내용이 마가복음 10장 42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막 10: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백성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이러한 모습이 세상의 모습이라면 예수님께서 원하는 모습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바로 낮아져서 섬기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까?
(막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을 본문 35절에 적용해 보면, 첫째 곧 으뜸이 되고자 하면 끝 곧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섬김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 당시의 문화 가운데에서 인구의 숫자에도 포함이 되어있지 않는 어린 아이 한 명을 데려다가 제자들 앞에 세우시고 하시는 말씀이 본문 37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막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1 세기 당시에는 어린 아이 중심적인 생각이 없었기에 유대 문화 가운데에서 어린 아이는 약자를 표현하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 한 명을 세우시고 섬김에 관하여 가르치시는 핵심적인 내용은 어린 아이같이 사회적으로 가장 연약한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영접하는 행동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우리 쉴만한 물가 교회 공동체에 적용해 보면 어떻습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는 진리를 전하는 교회 공동체가 섬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섬김을 받는 분들이 복음을 깨닫고 함께 나와 신앙 생활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마음에 함께 천국에 가고자 하는 전도의 대상들이 있습니까?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여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해서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분들을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