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강해 (34)
참된 제자도: 한 영혼의 소중함
마가복음 9:38-42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에 관한 예언(passion prediction)의 메시지를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마치시고 벳세다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목적과 제자들의 목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보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자신들이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높은 위치에 서기를 원한다면 낮아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낮아짐의 원칙은 섬김(service)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9장 35-37절에서 말씀하고 계신 내용의 핵심은 사회적인 권력 구조 아래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한 명을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습이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적 섬김의 모델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셨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예언하고 계신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이 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성육신 하신 사건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현하셔서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섬김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제자들의 실수를 통하여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아니라 사도 요한의 질문을 통하여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과 관련된 두 가지 시선을 발견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관련된 첫 번째 시선은 12 사도를 대표하고 있는 사도 요한의 입장이고, 두 번째 시선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제자들을 대표하는 사도 요한이 바라보는 입장은 무엇입니까?
(막 9: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사도 요한은 12 사도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드리고 있었고, 12 사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기’라는 마음이 그들 가운데에서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여러 번 생각해 본 것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내 쫓는 권능을 받았고(3:15; 6:7),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 주시는 모습들을 직접 보았습니다(5:1-20).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다볼산(변화산)에 올라가셔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질 때에, 다볼산 아래에서 제자들은 귀신들린 어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서 안절부절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어떻게 책망하셨습니까? 마가복음 9장 19절 말씀을 보면,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책망하시면서, 기도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을 따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모습을 통하여 마음에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시기(φθόνος)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기라고 하는 헬라어 명사는 ‘악한 눈’(evil eye)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줄 때에 대제사장들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이었습니까? 바로 시기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막 15:10) 이는 그(빌라도)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시기라고하는 단어가 ‘악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면, 시기란 마음 속에 있는 악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9-31절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죄의 목록을 6가지 분류의 21가지 목록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두 번째 분류의 첫 번째 죄의 목록이 시기입니다. 그리고 시기는 살인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사건을 경험하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사도 베드로도 부활의 산 소망을 경험한 성도들이(벧전 1:3) 버려야 할 죄의 목록 중에 하나로 시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벧전 2:1).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고 계십니까?
(막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을 따르지 않을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행동을 금하지 말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어떠한 사람은 즉각적으로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제자들의 시선과 예수님의 시선의 차이를 마가의 표현으로 알 수 있는데, 본문 38절에서 사도 요한이 언급하고 있는 우리들은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39절에서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표현하는 ‘나’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제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처럼 자신들의 교회만을 위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쉴만한 물가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그러나 쉴만한 물가 교회만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복음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모든 교회들이 부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예수님을 위하는 자들이 누구인가를 언급하십니다.
(막9: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예수님을 위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39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예수님을 비방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헬라어에서는 “비방하다”(κακολογέω)라는 의미는 “반대의 입장에서 말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반대의 입장에서 말한다고 하면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부인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 곧 복음을 받아 드리지 않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41-42절의 말씀에서 예수님을 위하는 자들(41)과 예수님을 위하지 않는 자들(42)의 예를 제시하고 계십니다.
(막 9: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1절의 말씀에서 예수님을 위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를 작은 정성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37절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 한 명을 섬기는 모습과도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극히 작은 어린 아이를 섬겼을 때에, 그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작은 정성 ‘물 한 그릇’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를 섬긴다면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42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작은 자들 중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 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하게 하다’(σκανδαλίζω)라는 헬라어 동사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지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고 하면 그 의미는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가 상처를 받아서 예수님으로부터 떠나가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내용은 이러한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나타내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가 상처를 받아서 실족하여서 넘어지게 된다면, 상처를 입힌 자는 당나귀가 돌리는 연자맷돌을 그 목에 감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는 의미입니다.
이 경고의 메시지를 우리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우리들은 제자들이 높아지기 위해서 다투고 있을 때에, 예수님의 섬김의 메시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어린 아이는 당시의 문화 가운데에서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믿는 자들이 지극히 연약한 자 한 명이 실족하지 않도록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내용의 핵심은 한 영혼의 소중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높은 자나 낮은 자의 구분이 없는 장소입니다. 오직 복음을 믿는 자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쉴만한 물가 교회입니다.
함께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