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한 불신은 타락을 가져 옵니다 (사 1:21-23)
2022년 5월 18일 새벽 설교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변론하자고 말씀하시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 길을 제시 하셨습니다.
첫번째는 순종하여서 언약의 복을 받는 것이고 (1:19), 두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배반하여서 전쟁으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1:20)
이사야는 본문 21-23절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적적 윤리적인 타락의 모습을 기록하면서 애카흐(אֵיכָה)라는 애가의 표현으로 시작을 합니다.
우리 개역 개정 성경에서 “어찌하여”로 번역 되어진 단어인데, 이 단어는 본래 장례식에서 불러지는 장송곡의 시작을 알리는 표현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애가를 부르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적적, 윤리적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불신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불신은 자연스럽게 도덕적, 윤리적 타락의 모습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덕적 윤리적타락은 어떠한 모습이었습니까?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언급하고 있는데, 먼저 우리가 21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사 1: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의 모습은 ‘신실한 성읍’으로서 정의가 충만하고, 공의가 거하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셨을 때에(삼하 7:24), 다윗은 하나님께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 7:29)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렸습니다.
(삼하 8: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사라졌을 때에 신실한 성읍은 창기(창녀)가 되었고, 살인자들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공의와 정의가 살아졌을 때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현상들을 이사야는 본문 22-2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 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 1:22)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사 1:23)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의와 공의가 사라졌을 때의 그들에게는 도덕적 윤리적인 기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본문 22절의 말씀을 보면 경제에서 도덕적 기준은 사라졌습니다.
은을 만들면서 불순물을 넣어서 찌꺼기가 되었고, 포도주에는 물을 탔습니다.
결국 도덕적 타락의 시작은 정직이 사라진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입니다.
이사야서에서 유다 왕 히스기야를 생각해 보십시오.
열왕기하 18장 3절의 말씀을 보면,
(왕하 18: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했다고 열왕기하 18:5-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의 모습이 사라지자 본문 23절의 말씀을 보면 윤리적 기준이 타락했습니다. 고관들이 도둑과 짝하며, 뇌물을 사랑하며, 돈을 쫓아 다니고, 고와를 위하여 변호하지 아니하고, 과부의 송사를 받아 주지 아니했습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정직이 무너지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돈을 사랑하고 따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의 불신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하여 도덕적 윤리적 타락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도덕적 윤리적 타락은 정직의 부재입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 앞에서 정직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