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 지역에서 살다 보면 매년 북극의 찬 공기(Arctic air)가 내려오는 한파로 인하여 영하 20도의 강 추위를 경험하게 됩니다. 올해에도 북극의 한파는 변함없이 찾아왔습니다. 북극의 한파가 지속되면 볼 거리도 생기는데 토론토 근교에 위치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결빙이 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나이아가라 폭포가 결빙이 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추위에 단단히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번의 숨에 폐까지 전해지는 찬 공기로 인하여 병원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Covid-19가 한참인 2년 전에도 광역 토론토 지역에는 북극의 손님이 찾아왔고 제가 기억하고 있는 그 날도 유난히 추웠습니다. 도로에는 이곳 저곳에서 추위로 인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차들을 견인하는 모습이 보였고, 거리에는 추위를 달래며 빠른 걸음을 걷는 사람들로 분주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시선에 한 중년의 여인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맥도날드의 출입구 앞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북극의 찬 바람을 막기에는 전혀 따뜻해 보이지도 않는 허름한 외투에 손에는 장갑도 끼지 않은 상태에서 음식을 찾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너무나도 애처로웠습니다.
차를 돌려 맥도날드에서 아침 세트 메뉴를 하나 주문해서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전해주면서 허기를 조금이라도 달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찬 바람에 의해서인지도 모르는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자신의 누추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여인에게 어찌 사연이 없겠습니까? 누가 이 여인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저의 마음 가운데에서 이러한 질문들이 생겼습니다. 국가는 가난한 자들과 복지의 사각 지대를 줄이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들을 했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사랑에 근거해서 형재와 자매를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가난한 자들을 향하여 무엇을 했는가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 18절에서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할 때에 우리들은 진리에 속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깨달은 우리들은 사도 요한이 가난한 자들을 향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일 3: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