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6일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3:1-6 (신약 56-57)
제목: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라
(막 3: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안식일의 본질은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구별되고 분별하는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선택하였는데 (엡 1:4), 이렇게 선택받은 성도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성도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안식일의 내면적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표면적인 중요성을 강조할 때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로서 거룩을 강조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형식을 강조하면서 안식일이 형식화되어질 때에 안식일이 가지고 있는 거룩이라는 본질의 의미를 삼켜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난 시간에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안식일 논쟁을 통하여,
(막 2:27) …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진 인간은 쉼을 위하여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안식일보다 더 소중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셨는데,
(막 2:28) …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라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주인이시므로, 안식일에도 주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한 쪽 손 마른 사람을 보게 되어집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만일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 쪽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다고 하면, 이것은 명백한 안식일 법 위반이기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더욱 주목했을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서를 해설해 놓은 미쉬나의 두 번째 책 ‘모에드’의 5번째 장인 ‘요마’를 보면 ‘대 속죄일’에 관련된 내용과 대제사장이 행하는 의식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 중에서 안식일에 치료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행위는 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병을 고칠 수 있는 예외가 있는데,
첫째, 생명이 위험할 때 의료 행위
둘째, 해산을 해야 하는 여인을 돕는 의료 행위
셋째,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를 전제로 눈, 코, 귀, 목에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건강상의 호전을 바라고 하는 행위는 금지되어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뼈가 부러져도 응급조치만 가능했지 뼈를 붙이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손이나 발이 삐었을 경우 물로 씻어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붓기를 빼려고 찬물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한 가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예수님께서 행위로 고치신다고 하면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명확한 불법 행위입니다.
그 이유는 손 마른 사람의 질병이 생명의 위협을 하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 말씀을 보면,
(막 3: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회당에 있을 때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 주셨던 사건을 마가복음 1:21-28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사건을 가지고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행위를 통하여 귀신을 내 쫓은 것이 아니라 말로 내 쫓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구약의 안식일 법을 기록하고 있는 미쉬나에서 예수님의 행위를 고발할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른 사항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어떠한 행동으로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시면 이것은 명백한 안식일 법 위반이므로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회당의 한 가운데 세우십니다.
(막 3: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사람을 회당의 한 가운데 세우시므로 바리새인들에게 무엇인가 일어날 큰 일을 기대하게 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안식일 법을 어긴다고 하면 바리새인들의 근거지인 회당에서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어기는 명백한 자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일 본문 4절의 내용입니다.
(막 3: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4절의 내용의 핵심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일을 옳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공관 복음서에서 마태복음을 살펴보기를 원하는데, 세리 마태(레위)는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추가하고 있는데 우리 다 함께 마태복음 12장 11-12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마 12: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마태복음을 근거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시는 사건에서 하나의 비유를 사용하시는데 그것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의 비유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구덩이에 빠진 동물을 안식일에 구조하는 방법과 관련해 바리새인들 사이에 다양한 입장들이 공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질문은 아마도 갈릴리 지방 바리새인들의 경우 안식일에 짐승을 구덩이에서 직접 끌어올리는 것을 허용하였음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질문은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귀하냐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일을 옳은 일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허용이 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안식일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본래의 뜻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6장 6절의 말씀을 보면,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명백히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에게 인애 곧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안식일 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까?
본문 5절 말씀을 보면,
(막 3: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예수님의 메시지를 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은 마음에 완악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완악함이라는 명사(πώρωσις)는 어떠한 상황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를 기본적인 의미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완악함이라는 단어는 본질에 관한 이해가 부족해서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형식에 빠져 있는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관한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된 고집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탄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방법은 무엇입니까?
본문 5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로 치유하신 사건은 안식일에 치료에 관한 법령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회당 안에 남아 예수님의 잘못을 논증해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회당 밖으로 나가버린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논의하게 됩니다.
그러면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시면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로 회복입니다.
‘회복하다’는 헬라어 동사 ‘ἀποκαθιστάνω’는 가장 좋은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 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신 행동이 육체적인 회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면,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회복의 의미는 영적 회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1장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13절 말씀을 보면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 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시므로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신 사건은 단지 육체적인 병을 고쳐 주신 것 만을 의미하지 않고, 우리들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역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면서 참된 안식을 얻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