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0일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4:10-12 (신약 58)
제목: 마음의 변화가 먼저입니다
(막 4:10)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요한 마가는 마가복음 4장에서 4가지 비유(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 막 4:1-20; 등불 비유, 막 4:21-25; 자라나는 씨 비유, 막 4:26-29; 겨자씨 비유, 막 4: 30-32)와 갈릴리 호수를 잔잔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막 4:35-41)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마가가 예수님의 비유를 마가복음 4장에서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마가는 4장에서 예수님의 비유를 기록하고 있습니까?
특별히 우리가 다음 시간에 생각해 볼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를 해석 할 때에 오늘의 말씀이 왜 중요합니까?
비유란 청중들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을 기초해서 메시지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유를 통하여 비유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깨닫게 되어지면 청중들이 깨닫는 영향력은 크게 되어집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우리들의 삶의 주변에 있는 소재들을 활용해서 비유로 설명하는 것은 청중들에게 친근한 소재들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의 메시지의 실질적인 의미가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비유란 어려운 방법이 아니라, 청중들이 예수님의 메시지를 깨닫지 못하자 그들에게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이 되어지는 전달의 방법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마가복음 1-3장까지 예수님의 메시지가 청중들에게 어떻게 이해되지 못해서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를 시작으로 청중들에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데,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 되었을 때에 마음이 완악해진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기관들(Scribes)과 바리새인들(Pharisees)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면서 “네 죄사함을 받았느리라”(막 2:5)고 말씀하셨을 때에, 서기관들은 그 마음에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막 2:6-7)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셨습니다. (막 3:5)
예수님께서는 왜 바리새인들의 ‘완악한 마음, πωρώσει τῆς καρδίας’에 탄식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굳어질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안식일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인식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완악한 마음으로 복음이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18절에서 이방인들을 책망하면서 마음의 굳어질 때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엡 4:18) 그들의(이방인들)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리고 우리들은 지난 시간에 영원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는데 그 핵심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성령의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고침을 받은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성령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완악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동입니다.”
결국 성령 모독 죄를 저지르는 것은 완악한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는 복음을 받아 드리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마가복음 4:1-2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배를 이용하여서 육지에서 조금 떨어져 비유로 말씀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막 4:1-2)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비유를 4장 3-8절에서 말씀하고 있고 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막 4: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 설명이 13-20절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중간인 10-12절의 말씀에 아주 특별한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우리 다 함께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성경을 찾으셔서)
(막 4:10)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본문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입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서 6:9-10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6장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서 소명을 받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전하는 메시지가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메시지라는 사실입니다.
(사 6: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그러면 왜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나쁜 영향력을 미칩니까?
바로 완악한 마음 때문입니다. 완악한 마음으로 인하여 이사야의 메시지를 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돌이킬 것이며, 돌이킨 신실한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보전할 ‘거룩한 씨’가 되어 그루터기로 남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이사야서의 배경을 근거해서 마가복음 4장 12절 말씀을 재 해석해 보아야 합니다.
학자들은 4장 12절에 있는 ‘μήποτε’라는 단어를 어떠한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지를 논쟁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부정 연결어이므로
이 단어는 목적과 결과의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단어를 목적의 의미로 해석하면 개역 개정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번역으로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 의미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외인(τοῖς ἔξω)들에게 막혀 있어서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이사야서 6장의 말씀과 상반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비유로 설명하시는 이유를 청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을 비유로 가르치셨다는 마가복음 4장 33절과도 대조를 이룹니다.
(막 4: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그러므로 본문 말씀에서 헬라어 단어 ‘μήποτε’를 목적으로 번역하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를 결과로 번역하고 그 의미를 영어 단어 unless로 번역이 가능하고 의미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unless’ 의미는 ‘~하지 않는 한’ (as is hope) 이라는 접속사입니다.
그러면 본문 12절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비유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이 돌아서서 용서함을 받지 않는 한 보아도 인식하지 못하고, 들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비유의 말씀을 깨닫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회개하고 돌아서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변화는 예수님 밖에서 외인으로 있었던 우리들을 예수님 안에서 제자로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자로 초청을 받은 삶은 마음의 완악함을 버리고 회복되어지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우리들이 이 사실을 믿고 있다면 순종하여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깨닫는 가장 첫 걸음은 마음의 변화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아가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