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5일 성금요일 설교
본문: 요한복음 19:28-30 (신약 182)
제목: 십자가 위에서 이룬 온전한 순종
(요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9장 28-30절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상 칠언으로 알려진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일곱 말씀 가운데에서 오늘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의 다섯 번째와(내가 목마르다: 요 19:28) 여섯 번째 (다 이루었다: 요 19:30) 말씀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절 말씀을 보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을 하였습니다.
누가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리려는 목적을 예수님이 죽을 죄를 지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서 예수님을 풀어주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으로 사용하려고 하였지만(눅 23:16,22), 유대인들의 민란을 무서워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채찍을 맞으신 상태에서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당시 로마의 법정에서 죄수에게 채찍의 벌을 내릴 때에는 세가지 형태의 채찍형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푸스티가티오(Fustigatio)라 불리는 형벌인데 일종의 훈계나 경고를 위한 형벌입니다. 이러한 형벌은 주로 공동체에서 폭력 행위에 관한 처벌입니다.
두번째는 플래게라티오(flagellatio)라는 형벌은 아주 잔혹한 채찍형으로 중대한 범죄자들을 다루는 처벌입니다.
세번째는 베르베라티오(verberatio)라는 형벌은 끔찍하게 채찍으로 죄수를 때리는 형벌인데, 이 형벌은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형벌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벌은 반 인륜적 죄를 지은 자를 처벌하는 형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채찍형 가운데에서 가장 중대 범죄자를 다루는 ‘베르베라티오’라는 형벌을 당하셨고, 십자가 형에서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이 찔리는 형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면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는 장면을 어떻게 예언하고 있고, 어떻게 정의되고 있습니까?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구약 성경 말씀 이사야서 53:5절 말씀입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 받는 종으로서 메시아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 고난 받는 종의 찔림과 상함과 징계와 채찍의 의미를 우리들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들의 허물과 죄악이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는 모습 가운데에서 찔림과 상함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징계와 채찍에 맞으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평화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평화는 ‘샬롬’이라는 히브리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샬롬의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언약의 관계로 하나님께서 성도의 믿음을 의롭게 여기실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실 때에 창세기 15:6절에서,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시므로 우리가 평화를 입었다는 말씀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약의 관계로 회복되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므로 우리들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나음을 얻다’는 히브리어 동사(רָפָא)의 일차적인 의미는 육체의 고통으로부터 나음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동사가 은유적으로 사용이 될 때에는 개인이나 국가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 53:5절의 말씀은 고난 받는 종이 우리들의 허물과 죄악으로 인하여 채찍을 맞았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2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리고 나음을 입었다는 헬라어 동사(ἰάομαι)의 의미는 죄로부터 해방되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은 우리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서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죄와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3:10절에서 시편 14:1절을 간접적으로 인용해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가상 칠언 가운데에서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말씀이 기록되어져 있는데, 이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져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9:2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모든 일”(πάντα)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일이란 하나님의 구원 계획(God’s salvation plan)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가시는 모습을 기록하면서 요한복음 1:29절에서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종려주일의 모습을 기록하고 난 후에 가장 먼저 기록하고 있는 말씀이 요한복음 12:23-24절의 말씀입니다.
(요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제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이 되어서 땅에 떨어져 죽는 모습으로 많은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편 69:21절 말씀을 이루시려고 “내가 목마르다”라는 가상 칠언의 다섯 번째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편 69편의 말씀은 다윗이 대적자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고난을 기록하고 있는 내용인데, 69:21절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시 69: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이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면서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에 사람들이 해면(sponge: σπόγγος)에 신 포도주를 가득 적셔 우슬초 줄기에 매달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습니다.
(요 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말씀하신 내용이 가상 칠언의 여섯 번째 말씀으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영혼이 떠나갔다고 사도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이 순종은 우리들의 삶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죄의 문제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7절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으로 인하여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고 하면 우리들은 이 성 금요일을 보내면서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시고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