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2일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6:35-44
제목: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봅니다.
우리들은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는 배경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한 것은 예수님께서 전도 여행 후 쉼을 얻기 위해서 제자들이 한적한 곳에 갔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데, 이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긍휼하심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어 내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다는 임마누엘로 실현되어질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해서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계실 때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공급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던 제자들은 마음 한 구석에서 걱정 거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자들의 저녁 식사를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병이어의 기적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회개의 복음을 전하면서 귀신을 쫓아 내고 병자들을 고치는 경험을 하고 돌아온 후에 이루어집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 가운데에서 갈릴리 호수를 잠잠케 하시는 사건을 통하여 자연을 다스리시고,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사건을 통하여 생명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저녁 식사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35-36절의 말씀을 보면,
(막 6: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본문 35절의 말씀을 다시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 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단어가 단수로서 제자 한 명이 아니라, 복수로서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9장 12절의 말씀을 보면, “열두 사도가 나아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열두 사도가 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저녁 식사를 걱정하고 있었고,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3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저녁 식사의 비용으로 이백 데나리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 이백 데나리온의 계산을 한 사람이 빌립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하루의 품삯이 일 데나리온인 것을 생각해 보면, 노동자 한 명이 이 백일 동안 일을 해야 하는 값어치를 제자들이 언급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와 누가, 요한과 달리 마가는 본문 38절에서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는지 가서 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언급하고 있고, 제자들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는 장면이 기록되어져 있는데 사도 요한 (보리)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가져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축사하시는 장면이 사복음서에 동일하게 나옵니다.
(막 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예수님께서 축사하셨다는 표현을 마태 마가 누가는 유로게오(εὐλογέω)로 표현하고 있고, 요한은 유카리스테오 (εὐχαριστέω)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헬라어의 의미가 미묘하게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마태 마가 누가는 찬양의 의미에 집중해서 표현하고 있고, 요한은 은혜에 집중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고 남자만 오천 명이 먹고 열 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우리들은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하여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번째로, 제자들은 임마누엘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해 주시고 공급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임마누엘의 신학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삭과 야곱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언급되어지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속되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레미야에 기록되어져 있는 임마누엘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일으키셔서 바벨론에 끌려 가 수치를 당한다고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임마누엘입니다.
(렘 42: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임마누엘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인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열 두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데 제자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 기록이 되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예수님의 임재가 우리 안에 있는데 걱정하고 근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마누엘을 다시 한번 깨닫고 경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과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면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두번째로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기도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찬양의 기도와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처럼 우리들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어떻게 합니까?
대부분, 불평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 안에서 문제를 해결 할 때에는 먼저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시험을 허락하셨다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하심을 믿고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들은 기도 가운데에서 감사의 능력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 가운데에서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골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기도 가운데에서 감사는 우리들의 영혼을 깨어 있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세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의 사건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오천명을 먹이셨지만, 최후의 만찬을 통하여 떡을 가지고 축복하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기독론과 성찬의 의미를 암시하고 계십니다.
조금 신학적인 이야기라고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모습과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시는 모습은 단어는 유사성으로 연결이 되어져 있습니다.
마가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도 떡을 가지사(took bread) 축복하시고(gave thanks) 떼어(broke)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떡과 물고기로 오천명과 사천명을 먹이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통하여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 주심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사건은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임마누엘의 의미와 기도의 중요성 그리고 최후의 만찬의 의미를 연결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배고픔 만을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니라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최후의 만찬을 암시해 주시므로 우리들의 영혼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