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3일 맥추 감사 주일 설교
본문: 레위기 22:29절 (구약 181)
제목: 우리들의 삶을 드리는 감사의 예배
오늘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의 “맥추절을 지키라”는 히브리 언어의 바른 의미는 “수확의 절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34장 22절의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라는 말씀에서 “맥추”는 “밀을 처음 거두워들일 때”라는 의미로 보리가 아닙니다.
그 시기는 유월절 다음 날인 안식일에서부터 계산을 해서 7주가 지난 시간이므로 5월 중순에서 6월 초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맥추절(수확의 절기)은 칠칠절을 의미하고, 칠칠절의 추수의 기간을 마친 다음날이 오순절인데,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을 성령 강림 주일로 지키면서, 한국 농경 문화의 배경을 가지고 보리 수확이 이루어지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맥추절에 감사의 의미를 강조해서 맥추 감사절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시기가 1년의 반을 넘기는 시점이므로, 맥추 감사절은 반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드리는 예배로 정착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들은 오늘 맥추 감사절로 예배를 드리면서 반년 동안 우리들의 삶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예배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하는 레위기 22장 29절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으로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지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레 22:29)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제물을 드리려거든 너희가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드릴지며
본문 29절의 “너희가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이라는 의미를 하나님의 입장에서 해석해 보면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으시도록” 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지 않는다고 하면 이것이 얼마나 큰 슬픔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것의 의미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제물이 온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레 1-4장), 온전하다는 의미는 “흠이 없는”(레 22:21)이라는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온전한 제물은 하나님의 거룩과 연결이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흠이 없는 온전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 되었을 때에 온전한 제물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제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에 제물로 드리는 양과 소와 염소만이 거룩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물을 하나님의 율법에 맞추어서 준비했다고 하여도 제물을 드리는 자의 삶이 바르지 않으면 받아 주시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는 아담과 이브의 자녀들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첫째가 가인이고 둘째가 아벨입니다.
세월이 흘러 형인 가인은 농사를 짓는 직업(창 4:3)을 가지고 있었고,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직업(창 4:4)을 가졌습니다.
이 둘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는데 가인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고(창 4:5),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습니다. (창 4:4)
(창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창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왜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습니까?
제물의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창세기 4장 7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명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드린 제물과 그의 삶을 동일체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인과 그의 제물” “아벨과 그의 제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히브리적인 표현으로 “동격의 소유격”(appositional genitive)이라고 부르는데 가인과 그의 제물이 동일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물이 아무리 흠이 없다고 해도 제물을 드리는 자가 삶 속에서 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이러한 예를 이사야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회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서 제물을 바쳐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지 않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사야 시대의 모습입니다.
(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또한 이사야서 1장 15절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를 드려도 받아 주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그들의 손에 피가 묻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사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악이 있고, 그 손에 피가 가득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기도와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과적으로 삶과 제물은 일치되어야 하는데, 제물이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온전한 상태이어야 하는 것처럼, 삶도 온전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동일한 말씀을 우리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리고 이러한 영적 예배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삶입니다. (롬 1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의 반을 보내면서 우리들은 오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고, 성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기 이전에서 우리들의 삶이 거룩한 삶으로 지난 6개월을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우리들의 삶을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