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4일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7:31-37
제목: 에바다: 마음의 문을 열어 하나님을 바라보자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져 있는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신 사건은 사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진 사건입니다.
마태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신 사건 이후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가에 도착하여서 산에 올라가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는 언급만 하면서 구체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마 15:29-31).
누가 또한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베드로의 신앙 고백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시다” (눅 9:20)로 연결이 되면서 예수님과 서기관들의 논쟁인 장로들의 전통과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그리고 이방인 전도와 칠병이어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신학적인 특징을 모두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마가는 왜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전도여행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신 두로 지역에서 시작되어서 35 Km (22 miles) 정도 북쪽인 시돈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이방인 지역인 데가볼리 지방(시돈의 동쪽, 갈릴리 호수의 북쪽)을 통과하셔서 갈릴리 호수에 도착하셨습니다.
두로 => 시돈 => 데가볼리 지방 => 갈릴리 호수
본문 32절의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갈릴리 호수에 도착한 예수님께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성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막 7: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본문 32절에 기록되어져 있는 헬라어 명사 가운데에서 “모기라로스” (μογιλάλος)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한번 사용이 되어지는 단어입니다. 그 의미는 “말하기가 어려운”이란 의미의 형용사입니다. 청각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마가는 이 단어를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 단어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간청을 들으시고 이 남자를 고쳐 주시는 사건이 33-35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33절 상반절에 예수님께서는 이 남자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리고”(κατʼ ἰδίαν)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을 우리들은 마가복음 5:40-43절의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시는 사건에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사도 베드로의 신앙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막 8:29) 이전에 예수님의 메시아의 비밀 모티브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는데, 메시아의 비밀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자를 고쳐 주신 사건도 공개되어지는데 이 사건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고 그들이 복음을 들었을 때에 마음의 문이 열려서 입술로 믿음을 고백하게 된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33절 중반절에서 34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치유 행동은 다섯 단계로 구분이 됩니다.
(막 7:33) …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1) 손가락을 귀에 넣고, 2) 침을 뱉어, 3) 혀에 손을 대시며, 4) 탄식하시며, 5) 에바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침을 뱉었다는 표현을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데 1세기 예수님 시대의 기적의 행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상황 가운데에서 침을 뱉는 치료 행위가 있으셨는데, 요한복음 9장 6-7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고쳐 주실 때에도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치료 행위의 마지막은 아람어로 “에바다”(εφφαθα)라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아람어를 알지 못하는 헬라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마가는 헬라어 번역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열리라”(διανοίχθητι)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자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해졌습니다.
(막 7: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주간에 오늘 주일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육체적인 기적 뿐만 아니라 영적인 기적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먼저 우리들은 육체적인 기적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말에 교회 집사님(손금미 집사님)이 낙상으로 쓰러지시고 나서 수술 후 회복의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와 아내가 병원에 계신 손금미 집사님을 심방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우리가 듣고, 말하고, 보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손금미 집사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는데, 지난 3주 전부터 손금미 집사님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조금씩 하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에 저희가 심방을 했을 때에는 손금미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기존에는 간단한 대답만을 하실 수 있었는데, 지난 주에는 저희와 대화를 나누고 요한 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따라 율동까지 하셨습니다.
“에바다”의 역사가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제 재활 치료를 위해서 해밀톤으로 병원을 옮기셨는데 예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서 함께 예배 드릴 날이 속히 오도록 기도 드립니다.
두번째로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아람어 “에바다”의 헬라어 동사는 “디아노이고”(διανοίγω)입니다.
사도행전 7장 56절의 말씀을 보면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데, 바로 하늘이 열리다는 헬라어 동사가 “διανοίγω” 입니다.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우리가 육체의 귀와 입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열릴 때 우리들은 천상의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천상의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때에 우리들의 신앙의 눈이 열려서 말씀 안에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동사의 의미가 비유적으로도 사용이 되어지는데,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마음의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눅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우리들은 설교의 서두에서 “말하기가 어려운” 이란 헬라어 동사 “μογιλάλος”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남자가 청각 장애로 말하기가 어려웠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어려움이 사라졌습니다.
헬라어 동사의 구조를 보면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이라는 접두어와 “말하다”라는 동사가 결합 되어져 있는데,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통하여 어려움이 사라져 듣고 보게 되었습니다.
본문 36절에서는 예수님의 메시아의 비밀을 언급하고 계신데, 비밀은 더욱 더 전파 되어졌고 사람들은 심히 놀라게 되었습니다.
(막 7: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에바다”의 역사가 우리들에게 다가오기를 소망합니다.
먼저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들의 영혼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소망하기를 기도 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