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09일 주일 설교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8 (P. 333)
제목: 감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도 바울이 기록한 13편의 서신서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기록 된 서신서의 제목을 알고 계십니까?
이 부분은 성경 신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논쟁 가운데 있는데,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서신서는 데살로니가 전서와 갈라디아서입니다.
우리가 추수 감사절 예배에서 이 부분을 다루는 것은 어렵고, 제가 가지고 있는 결론만 말씀을 드리면 13편의 사도 바울 서신 가운데에서 바울이 기록한 첫번째 서신서는 AD 50년경 말에서 51년 초에 고린도에서 기록한 데살로니가 전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였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2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 지역에서 데살로니가 전서를 가장 먼저 기록했다고 하면, 우리들은 데살로니가 전서 1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복음”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 환난 가운데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3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3주 동안 데살로니가 지역의 유대인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에 관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도시가 소동하였고, 믿는 자들이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살전 1:9-10).
(살전 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전하며 살아갈 때에 그들에게 다가온 삶은 환난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난 가운데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동행하심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앞에 서 있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1:5; 2:19).
특별히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복음”이라는 단어가 6번 사용이 되는데(1:5; 2:2,4,8,9; 3:2), 2장에서 사도 바울이 4번이나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2장에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복음의 무엇을 전했기에 데살로니가 지역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재림의 사건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받아들인 기독교인들의 삶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교회를 향하여 “우리”라는 단어를 54회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에서 밝히고 있는 사도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2장 10절의 말씀을 보면, 자신들의 삶이 어떠한 삶인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살전 2: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결과적으로 사도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는 삶을 살아갔는지에 관한 증인으로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언급하고 있다고 하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삶은 이러한 삶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옳고 흠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성도들에게 어려운 삶의 숙제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 5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가르침에서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고(5:2)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은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5:8) 살아가는 삶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어떻게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삶 가운데에서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3총사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기쁨(Rejoice)과 기도(Pray)와 감사(Thanksgiving)입니다(살전 5:16-18).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오늘 우리들은 5장 18절의 감사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범사”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헬라어에서 범사는 “ἐν παντὶ”로 “모든 환경”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옳고 흠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모든 환경 가운데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삶이 성도들의 삶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감사는 성도들에게 호흡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로서 “일상의 삶”을 살아갈 때에 감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일상의 삶 가운데에서 감사하는 것은 반복되어지는 삶의 행위 가운데에서 감사를 고백하고, 평범한 삶의 방식에서도 감사를 고백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삶 가운데에서 감사는 하나님의 복음에 보답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깨달은 성도들의 삶 가운데에서 기쁨이 넘쳐 날 때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살전 3: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깨달은 성도들이 기쁨이 넘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환경의 문제가 우리들의 삶 가운데에서 감사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가이사랴의 감옥 생활을 하면서 기록한 에베소서에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특별히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 당하기 전에 기록한 디모데 후서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딤후 1: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환경은 감사의 조건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에게 감사의 조건은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복음을 깨달은 성도들이 모든 환경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과(롬 1-8), 참 이스라엘이란 믿음을 소유하고 있고, 선택 받은 자들인데 그들은 회개하여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언급하고나서(9-11), 이러한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감사하는 삶은 예배자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상의 작은 일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