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6일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8:34 (P. 68)
제목: 참된 제자도의 세가지 삶
(막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들은 쉴만한 물가 교회가 연방 정부에 채리티 등록이 되고 나서 다섯번의 시간을 통하여 시편 23편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추수 감사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마가복음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마가복음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 나침반을 바르게 잡고 오늘 성경 말씀을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역과 두로와 시돈 지역의 이방인 사역을 마치시고 난 후에 벳세다에서 출발하여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특별히 마가는 8장 22-26절의 말씀과 10장 46-52절의 말씀에서 시각 장애인을 고쳐 주시는 모습을 벳세다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의 처음과 끝에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이 영적인 눈을 떠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에 있는 여러 마을을 지나가시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셨던 내용이 무엇입니까?
(막 8:27) …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에 대한 대답으로 제자들이 “세례 요한”과 “엘리야” 그리고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대답하였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막 8:29)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이에 대한 역사적인 대답이 베드로의 입술에서 나온 것을 우리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막 8:29) …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이러한 신앙 고백 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예언 하셨지만, 베드로의 강한 향변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동일한 본문을 다루고 있는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을 추가하고 있는데, 마태복음 16장 23절의 말씀을 보면,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라는 표현입니다. 넘어짐이라는 헬라어 명사 “σκάνδαλον”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상대에게 시험에 빠지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시면서 하시는 말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다 함께 본문 34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막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참된 제자도가 무엇인가를 가르치시면서34절에서 세 가지의 삶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첫째, 자기를 부인하는 삶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사순절을 보내면서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삶이나, 금욕주의나 자기 부정의 삶으로만 생각한다면 본문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하는 삶은 어떠한 삶입니까?
자기를 부인하는 삶은 자신이 죄에 노출되었을 때에 죄에 넘어가지 않고 죄를 버리는 삶입니다.
우리들은 죄를 버리다는 표현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를 멀리 버린다는 의미는 불의로부터 멀어져서 거짓된 삶을 버리고 성도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6장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세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에 연합한 자들은 새 생명 가운데에서 살아가는데, 이러한 삶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인데 이러한 삶은 결과적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우리들의 삶이 불의의 도구가 아니라 의의 도구로 사용이 되어지는 삶입니다.
(롬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도구)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두번째로 요구하시는 삶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들은 마가복음이 공관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본문 34절에 처음으로 “십자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에게 “십자가”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에 제자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었겠습니까?
1세기에 살았던 플루타르크(Plutarch)라는 그리스 철학자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에 죄수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처형의 장소에까지 움직여야 한다는 기록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골고다의 언덕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는 모습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십자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에 어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바로 죽음과 수치스러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 이후에 “십자가”의 의미는 바뀌어졌습니다.
마가복음의 독자들은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했겠습니까?
십자가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결과적으로 “십자가를 지고”라는 의미는 자신의 삶을 부인하는 삶 곧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강화시키는 의미로 사용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참된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갔던 왕 중에 한 명이 “히스기야”입니다.
열왕기하 18장의 말씀을 보면,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18장 3절과 5절의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 왕이 어떠한 삶을 살아갔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하 18: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왕하 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그래서 18장 6절의 말씀에 히스기야 왕의 삶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하 18:6)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우리가 히스기야의 삶을 통한 연합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도의 삶에 적용해 보면 이러한 삶입니다.
1)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삶입니다.
2)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세번째로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키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제자도의 삶이란 신실하게 예수님의 주 되심을 고백하면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우리들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지상 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알고 있습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도가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지켜 행하게 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쉴만한 물가 교회를 통하여 전파되어지는 이 복음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지켜 행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합니다.
이렇게 지켜 행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이 임마누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책망하시면서 참된 제자도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삶이 (1) 자신을 부인하여 죄를 버리고, (2) 십자가를 짐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3) 예수님을 따라 복음을 전하여 지켜 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복음에 순종하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