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30일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9:1-8
제목: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마가복음 9장 2-29절의 말씀에는 동일한 시간에 일어난 두가지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는 사건(9:2-13)과 귀신들린 어린 아이를 제자들이 고쳐 주지 못하는 사건(9:14-29)을 연속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이 두 사건은 장소적인 차이를 두고 동일한 시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들이 이 두 사건을 제자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그룹에서는 영광스럽게 변형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한 그룹에서는 귀신 들린 어린 아이를 치료하지 못하는 일을 경험하면서 무엇이 어린 아이를 치료할 수 있게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두 사건을 통하여 참된 제자도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깨닫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9장 1절은 8장 27-38절의 말씀과 9장 2-13절의 말씀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막 9: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참된 제자도를 가르치시고 난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제자들 중에서 죽음 이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가 있다고 예언하고 계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어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9장 2-8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어진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 먼저 2-3절의 말씀을 읽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막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예수님께서 참된 제자도의 세가지 삶 곧 (1) 자신을 부인하여 죄를 버리고, (2) 십자가를 짐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3) 예수님을 따라 복음을 전하여 지켜 행하는 삶이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이라는 것을 가르치시고 난 후에 엿새가 지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우리가 변화산이라고 부르고 있는 갈릴리 호숫가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다볼 산(Mount Tabor)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되어졌다(μετεμορφώθη)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변형되어지는 모습을 예수님 스스로 변형된 능동태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변형되어진 수동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동태를 divine passive (신적 수동태)로 표현하는데, 예수님께서 변화 되시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개입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개입하고 계신 예수님의 변형의 모습을 통하여 마가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여 주고 있고, 이 말씀을 읽는 독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옷에서 광채가 나고 있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에 비유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마치 빨래하는 자가 이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빛나고 희게 되어졌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는 예수님의 얼굴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우리들은 본문 3절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된 것을 알 수 있지만, 마가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변형되어진 모습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는데(행 1:9)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장 22절에서 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벧전 3: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본문 4절에는 예수님께 변형되어 지셨을 때에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씀을 나누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9: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본문 4절에 등장하는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있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 가운데에서 베드로의 대답이 본문 5-6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막 9: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그런데 베드로의 답변에는 예수님에 관한 신앙 고백이 없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천상의 모습 가운데에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랍비(ῥαββί)라고 부르고 있으면서 자신이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8:29)라는 고백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랍비라는 의미는 “my great one”이라는 의미로 “나의 위대한 분”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당시 헬라 시대의 언어의 의미는 “선생님” (Sir)정도의 의미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는 위대한 자신의 고백 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8:31)의 예언과 참된 제자도의 사명(8:34)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을 짓겠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8:27)는 질문으로 예수님께서 선지자보다 뛰어나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짓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보다 위대하신 예수님만을 위해서 초막을 짓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베드로의 반응과 관련해서 본문 6절에서 무서워서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막 9: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마가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변형 되어지는 사건을 통하여 강조하고 싶은 하늘의 음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9: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하늘의 음성을 1장 11절에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과 오늘 본문 9장 7절의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장 39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백부장의 고백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가가 자신의 독자들에게 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9장 7절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예언하고 계신 마가복음 8장 31절의 말씀입니다.
(막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이 복음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고전 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본문 8절의 말씀을 보면,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지고 예수님만 보이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9: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모세와 엘리야의 영광이 사라진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오늘 우리들은 종교개혁 50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이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