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강해 (32)
참된 제자도: 기도
마가복음 9:14-29
저희 가정이 미국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 유학을 오고 1년쯤 지난 2008년으로 기억합니다. 저희 가족은 Maijer마트에 생활 필수품을 구입하러 갔습니다. 일상처럼, 마트에서 저와 아내는 필요한 물건들을 고르고 있었고, 3살이 지난 하원이는 엄마 아빠의 주변을 돌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원이가 균형을 잃었고,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하원이의 아랫입술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고, 손에 피가 묻자 하원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너무 놀라 하원이를 품에 안고, 지금까지 골랐던 물건들을 모두 내버려 둔 체 뛰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오는 동안 아픔으로 인해 울고 있는 하원이를 아내가 꼭 껴안아 주면서 “궨찮아, 궨찮아, 집에 가서 치료해줄게!”라고 위로해주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원이가 아빠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아빠 하나님께 기도해, 하나님이 치료해 주신다고 했잖아” 그 순간 저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처럼 놀랐습니다. 당시 저는 생활비와 등록금, 그리고 서투른 영어로 신학교 공부로 인해 많이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원이를 통하여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김 목사, 궨찮아, 기도해 내가 그 문제 해결해 줄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변화산 사건(9:2-8)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메시아의 비밀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9:9), 부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내용과 답변이 9-13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인 병든 소년을 고쳐 주신 사건 (9:14-29)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참된 제자도에서 기도가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세가지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예수님과 군중들과의 대화입니다 (14-19). 두 번째 장면은 예수님과 귀신들린 소년의 아버지와의 대화입니다 (9:20-27). 그리고 세번째 장면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9:28-29).
BODY 1: A deficient faith (Mark 9:14-19) 믿음의 결핍
마가복음 9장 14-19절 말씀을 살펴보면, 믿음의 부족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3명의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변화산(다볼산)에서 내려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14). 모여 있던 군중들이 예수님을 보았을 때, 무리들은 크게 놀랐다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15).
마가는 16-18절에 첫 번째 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막 9: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그러자 무리 중에 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어린 아이의 아버지가 대표로 대답합니다.
(막 9: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뻣뻣)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귀신들린 어린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의 믿음에 관하여 부정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에 제자들은 아무 능력도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마가복음 3:15; 6:7, 6:13 말씀을 근거해서 보면,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 내는 능력을 받았고(3:15), 또한 많은 귀신들을 쫓아 내었고(6:7-13), 많은 환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6:13).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시는 모습과 (5:21-24a, 35-43), 수로노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딸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7:25-30). 또한 7장 35절 말씀을 근거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말을 못하는 자를 데리고 왔을 때,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분명하게 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지금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우리는 9장 19절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그곳에 있는 모든 무리들에게 책망하십니다. 특별히 제자들의 믿음 없음에 관하여 책망하십니다.
(막 9: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삶에서 믿음은 어떻게 역사합니까?
믿음은 단번에 100%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신앙의 태도 가운데 불신앙의 면에 의해서 계속해서 위협을 당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씀을 드리면,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는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흔들릴 때면, 불신앙의 측면에 의해서 계속해서 우리들의 신앙은 흔들리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믿음의 훌륭한 조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엘리야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절 말씀을 보면, 엘리야는 자신의 확실한 믿음의 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왕상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엘리야의 믿음은 기적을 초래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 말씀을 보면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이슬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17장 8-16절의 말씀을 보면, 사르밧에 있는 과부가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을 가지고 엘리야을 섬겼을 때, 항아리에 있는 밀가루와 병에 있는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려냈습니다 (왕상17: 17-24).
엘리야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싸워 승리하였고 기손 시냇가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왕상 18:20-40).
그러나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을 때, 엘리야의 신앙은 위기를 맞이 합니다. 엘리야는 로뎀 나무 밑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왕상 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엘리야는 신앙의 나약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고, 그의 마음을 만져주셔서 새로운 힘을 부여해 주었습니다(왕상 19-5-7).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주님의 선지자로 거듭나게 되었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이나, 엘리야처럼 신앙의 문제로 인하여 흔들리고 있지 않으십니까?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롱 당하지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들은 믿음을 가지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불신앙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BODY 2: The call to faith (Mark 9:20-27)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장면으로 이동합니다. 오늘 본문의 20-27절 말씀을 보면, 귀신들린 소년의 아버지와 예수님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무리들은 대화의 주변에 서 있습니다. 마가는 자신의 독특한 묘사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주변인물의 신앙을 보여주어서, 주인공인 제자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가는 소년의 증상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그리고 소년의 아버지의 입술을 통하여 이 소년의 증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소년은 불 속과 물 속에 띄어 들었습니다. 또한 경련을 일으켜 사람들을 모두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실패로 인하여 소년의 아버지의 믿음은 나약해 졌습니다. 아버지의 질문은 예수님에 대한 불신앙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22절 말씀을 보면,
(막 9: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제자들의 무능력을 경험한 귀신들린 어린 소년의 아버지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아버지는 조건절로 예수님께 말씀하면서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마가복음 1장 40-45절의 나병환자의 신앙 고백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신앙은 병든 소년의 아버지의 신앙과 정 반대였습니다. 나병환자는 무엇이라고 외칩니까?
(막 1: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나병환자의 믿음의 고백에 관한 예수님의 반응은 측은히 여기시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병환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아버지의 간청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책망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그러면 누가 믿는 자입니까? 바로 소년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것은 기적은 간청하는 사람의 믿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과 소년의 아버지의 믿음의 문제는 기적의 확신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볼산(변화산)에 계시는 동안 귀신 들린 소년을 고쳐 주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간청자의 굳건한 믿음이 없으면 그 간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병든 소년의 아버지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소년의 아버지는 소리칩니다.
(막 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우리가 소년의 아버지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또한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의 믿음의 연약함을 도와주십시오”
1837년에 John R. Wreford라는 미국의 시인에 의해서 기록된 한편의 시는 우리들의 신앙의 상태를 잘 나타내 줍니다.
“Lord, I believe; Thy(your) power I own”이라는 시를 제가 번역을 해 보았는데 낭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의 능력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당신의 말씀에 나는 순종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진리가 내 안에 머물고 있을 때에
나는 쓸쓸함과 고독 가운데에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믿습니다. 그러나 불신앙으로 나는 두려웠습니다.
때때로, 나의 신앙은 흐려집니다.
그러면, 나는 기도와 눈물 가운데에서 당신을 찾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능력을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나는 믿습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연약하고 나약합니다.
나의 나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믿음의 확신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는 오직 당신만을 믿습니다.
나의 영혼에 평화를 주시옵소서
하나님, 당신의 성령을 나의 영혼에 부어 주시옵소서
도와 주시옵소서, 나의 믿음 없음을…
비록 어린 소년의 아버지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소년의 아버지의 고백은 소년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BODY 3: The source of Faith (Mark 9:28-29) 믿음의 근원
이제 본문은 마지막 장면으로 이동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집으로 들어갑니다. 마가복음에서 집이라고 하는 곳은 제자들과 예수님의 사적 대화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이 묻습니다.
(막 9: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막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왜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기도를 연결시키십니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기도는 믿음의 능력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현재성에 대한 표현입니다.
달리 말씀을 드리면,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삶과 동행(임마누엘)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다른 표현은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만일 우리들의 삶 가운데에서 믿음의 결핍을 느끼고, 믿음이 무엇인지, 기도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이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번 배워야 합니다.
기도는 인간의 약함의 표현이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매일 매일 기도하는 삶으로 믿음의 문지방을 넘어서 하나님 안에서의 참 평화, 참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