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세 번째 주일
회개로 인도하는 예수님의 빛
요한복음 1:1-5
김윤규 목사
우리들은 공관 복음서에서 첫 번째로 기록되어진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나 탄생 기사가 없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요한 마가는 A.D. 65-69년경에 자신의 복음서를 복음에 관한 간절함을 가지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의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복음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외쳤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 베드로의 메시지는 삼천 명이 세례를 받는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로마의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 하면서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제자들의 삶은 고난과 핍박의 삶이었습니다.
AD 64년 7월 18일 로마의 대 화재 이후에 네로 황제에 의한 피의 학살이 기독교인들에게 시작되었는데, 옥중에 있었던 사도 바울이 AD 64년 말~65년경에 참수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 또한 AD 65년경에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영적 스승인 사도 바울의 순교와, 영적 아버지인 사도 베드로의 순교는 요한 마가로 하여금 간절함을 가지고 복음을 기록하는 힘을 만들어 냈습니다.
반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돌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사도 요한의 기록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8장에서 교회가 핍박을 받고 흩어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 14절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복음이 전파되어진 사마리아에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의 모습은 더 이상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AD 80년에서 100년 경에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를 유대 공동체와 헬라 공동체가 혼합 되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어지는 공동체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20장 31절에서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 요한이 밝히고 있는 요한 복음의 기록 목적은,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사도 요한이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하면, 요한 복음 1장 1절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사도 요한도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족보나 마태와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탄생 기사를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요한 마가가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와 연결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기록론적인 관점에서 “말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고,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는 임마누엘의 신학을 발견하게 되어지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사건(1:14)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깨닫게 됩니다(마 1:23).
사도 요한은 보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를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천지 창조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역사적인 사건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구원의 역사의 최고점에 해당이 되어집니다.
우리들은 사도 요한이 밝히고 있는 요한 복음의 기록 목적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생명을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20장 31절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생명을 얻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일이 무엇입니까?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두움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사도 요한이 언급하고 있는 생명의 빛의 근원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허락합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다는 사실은 누구든지 이 빛을 바라보고 믿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들이 대림절 세 번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 거하고 있습니까?
어두움에 거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빛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섬기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어두움에 거하고 있다고 하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빛 안에 거하는지, 어두움에 거하는지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의 모습에 비추어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있지 못하면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어두움에서 살아갈 때에 빛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빛을 깨닫고 회개의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라는 대림절을 보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의 복음을 깨달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나아간다면 우리들의 어두운 죄악 된 모습에 빛을 비추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누가복음 4장 43절의 말씀을 깨닫고 보내는 대림절은 예수님의 빛을 우리들의 어두움에 비추어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게 합니다.
(눅 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분주한 성탄절이 아니라, 죄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에 예수님의 빛을 비추어서 회개하면서 성탄절을 맞이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