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2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설교
본문: 시편 1:2
제목: 복 있는 사람은? (2)
시편 73편과 함께 대표적인 지혜의 시인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 가운데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아가는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의 백성들에게 약속해 주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삶 가운데에서 공급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고 하면, 피조물인 인간의 입장에서 행복한 삶이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좁은 길로 걸어가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은 지난 시간에 좁은 길을 걸어가는 복 있는 사람이 멀리해야 하는 세가지 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1)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2)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13-14절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처럼 좁은 길을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하면 복 있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고 있는 시편 1편 2절의 말씀은 복 있는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 어떠한 길인가를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먼저 우리들은 “여호와의 율법”에 관하여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시인이 언급하고 있는 여호와의 율법은 토라(תּוֹרָה)입니다. 우리가 토라를 문자적인 의미에서 구약 성경의 모세 오경으로 한정할 수 있지만, 시인이 사용하고 있는 여호와의 율법으로서 토라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조금 더 넓게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토라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1편 2절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단지 모세 오경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포함하여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우리들에게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1)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2)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구속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을 깨닫게 되고, (3)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 되었음을 깨닫게 되고, (4)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 보게 됩니다.
그러면 시인이 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시편 19편 7-8절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율법과 증거와 교훈이 우리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첫 번째로 여호와의 율법은 (1)완전하여 우리들의 영혼을 (1)소성시키십니다.
우리들에게 ‘소성’(蘇醒)이라는 한자가 어렵게 다가오지만, 그 의미는 되살아날 소에 깰 성으로 생기를 북돋우어 주다는 의미로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 동사 ‘소성하다’(שׁוּב)는 의미는 ‘되돌아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영혼이 되돌아간다는 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통하여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개하고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여호와 증거는 (2)확실하여서 우둔한 자를 (2)지혜롭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참된 지혜를 어디에서 찾고 계십니까? 시편 111편 10절의 말씀을 보면, 지혜가 어디에서 시작되어지는 깨닫게 됩니다.
(시 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우리들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난 시간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경외하다는 히브리어 동사(יָרֵא)의 의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는 모습으로 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입니다.
세번째로 여호와의 교훈은 (3)정직하여서 (3)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3장 4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다 거짓되지만 오직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롬 3: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네번째로 여호와의 계명은 (4)순결하여서 (4)눈을 밝게 합니다.
여호와의 계명을 통하여 우리들의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율법, 증거, 교훈, 계명을 하나의 의미에서 말씀으로 생각하면 말씀은 우리들의 삶을 소성 시키시고, 지혜롭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묵상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하가흐(הָגָה)입니다. 이 동사가 구약 성경에서 사용이 되어질 때에 3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첫째, 동물들이 내는 소리입니다.
1) 비둘기가 배가 고파서 ‘구구구’하는 소리
(사 38:14)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2) 사자가 먹이를 앞두고 ‘으르렁’거리는 소리입니다.
(사 3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 왔다 할지라도 …
우리가 이사야서 31장 4절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시는 모습을 이사야 선지자는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신의 먹이감을 움키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표현할 때에 묵상하다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람들이 내는 소리입니다.
시편 35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찾는 자들을 향하여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싸워 달라고 간청합니다(시 35:1). 그러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멀리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면서(35:22), 자신의 입술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의를 말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 35:28)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 71:24) 나의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작은 소리로 읊조리오리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셋째, 혼잣말(soliloquy)로 하는 독백 가운데에서 나오는 묵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죽음 이후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여호수아 1장 1-9절 말씀에 기록되어져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묵상이란 낮과 밤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그러면 우리들은 “묵상하다”는 세 가지 의미를 통합해서 생각해보면 그 의미가 현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잘못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묵상이란 “5분 묵상,” “10분 묵상”으로 표현되어지는 잠시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간절함으로 내는 소리와 같이 말씀을 찾고, 하루 종일 주의 의를 말하고,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나오는 독백이 묵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시편 1편 2절의 말씀을 통하여 복 있는 사람의 두가지 특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