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2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11:15-19 (p. 74)
제목: 모든 민족이 함께 예배하는 교회 공동체
요한 마가는 샌드위치 구조라고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샌드위치의 빵에 해당하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아서 말라 죽는 사건을 처음(막 11:12-14)과 끝(막 11:20-21)에 배치하고 있고, 그 중앙에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사건(막 11:15-19)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나오셔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난 후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요한 마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사건을 샌드위치 구조의 중앙에 위치시킴으로 인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에게 무엇이 문제인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사건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사건(막 11:15-16)이고, 두 번째 부분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막 11:17).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예수님의 대적자들의 반응입니다(막 11:18).
먼저, 우리가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모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막 11: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막 11: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들어가시고 난 후에 바로 성전 안 이방인의 뜰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을 내쫓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가 15절의 말씀을 통하여 알게 되는 사실은 성전 안 이방인의 뜰에서 제물로 사용이 되어지는 비둘기를 팔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요한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이 하실 때에 소와 양도 팔고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요 2:14). 또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서 제물로 사용이 되어지는 비둘기와 소와 양을 판매하는 것을 금하고 계신 것과 환전을 금하고 계신 것은 구약의 제사 제도 자체를 부인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루살렘 성전이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고 있어서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제사 제도를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서 이렇게 화를 내시면서 매매하는 자들과 돈을 바꾸는 자들을 내쫓으셨습니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예루살렘 성전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기능을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 흠이 없는 번제물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였습니다. 또한 20세 이상의 유대인들은 매년 반 세겔(노동자 이틀의 품삯 두 데나리온의 가치)의 성전세를 내야 했는데(마 17:24), 로마의 황제가 그려져 있는 화폐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성전에서 공식적으로 사용이 되어지는 두로 화폐를 사용하기 위해서 환전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본질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제사를 드리기 위한 번제물과 환전을 하는 일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물과 성전세라는 이유로 폭리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인데, 성전세 반 세겔은 노동자가 이틀 동안 일한 값어치입니다. 그런데 두 데나리온을 두로 화폐로 바꾸기 위해서 내야 하는 수수료가 1/3 데나리온이었습니다. 또한 환전 금액이 반 세겔이 넘을 경우 추가로 1/3 데나리온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비둘기의 경우에도 성전 밖에서 비둘기 한 쌍을 구입을 하면 3.3 데나리온이었는데, 성전 안에서는 무려 7.5배 비싼 25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성전 밖에서 가져온 번제물은 흠이 있다는 이유로 받지 아니하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었고, 환전을 통해서도 폭리를 취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이방인의 뜰에서 이러한 행동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셔서 세운 성막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거하실 성소입니다(출 25:8).
(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그러므로 출애굽기 33장 9-11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백성들을 함께 만나셨을 때에 그 장소를 회막이라고 불렀는데,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회막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백성들에게 임하여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출 33: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봉헌하는 모습에서도 성전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우리들은 깨닫게 됩니다.
열왕기상 8장 22-53절의 말씀을 보면 성전을 봉헌하면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솔로몬의 기도 가운데에서 오늘 본문과 연관하여서 성전을 생각해 보면 성전은 기도하는 장소입니다.
(왕상 8: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모습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루살렘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οἶκος προσευχῆς)인데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면서 수식하는 내용인데, 예루살렘 성전 곧 하나님의 집은 “만민”(πᾶσιν τοῖς ἔθνεσιν) 곧 모든 민족(all the nations)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씀인데, 당시 1세기에 살고 있었던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치욕적인 표현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의미는 이방인들이 이방인들의 뜰을 넘서 성전에 들어와서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은 금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유대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본문 17절에서 말씀하고 계신 내용은 예레미야 7장 11절의 말씀을 재해석 하셔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렘 7: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7장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말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면서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 여호와의 집에 들어와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성전을 도둑들의 소굴로 바꾸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 아닌 자신들의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을 경험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꾀하고 있었습니다.
(막 11: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큽니다.
첫째, 교회의 리더쉽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아닌 자신들의 영리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죄입니다.
둘째,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영리를 목적으로 교회를 이용하는 것도 죄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데(고전 3:16), 죄로 우리들의 몸을 더럽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는 기도하고 예배하는 장소라는 사실을 깨닫고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