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6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설교
모퉁이의 머릿돌 되신 예수님
마가복음 12:1-12
김윤규 목사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이유는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일반적인 소재들을 통하여 상징적인 의미를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유는 현실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4장 1-20절에서 생각해 본 것처럼, 1세기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씨를 뿌려서 농사를 짓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을 때에서 씨앗이 더러는 길가에, 더러는 돌밭에, 더러는 가시 떨기 사이에, 그리고 좋은 땅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적인 소재를 가지고 예수님께서는 상징적은 의미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들은 요한 마가가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고 있는 무화과 나무가 저주를 받는 모습을 샌드위치 구조라고 하는 독특한 방법을 통하여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파게’라고 하고는 푸른 열매를 맺지 못하여 저주를 받는 이유는 봄철에 ‘파게’라고 하고는 푸른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는 가을철에 ‘테에나’라고 하는 무화과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모습의 상징성을 가지고 성전에서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책망하시면서 하나님의 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십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형식에 치우쳐 기도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도 현실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는 창세기 9장 20절의 말씀부터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요 생산물이었고, 열두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할 때에도 포도송이는 풍성함과 번영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민 13:23).
이사야서 5장1-2절의 말씀을 통하여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 극상품의 포도나무에서 들포도 열매 맺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모습을 우리들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극상품의 포도나무가 무엇을 상징하고 어떠한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는지를 이사야서 5장 7절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 5: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이러한 배경에서 오늘 본문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포도원 주인, 포도원을 관리하는 농부들, 포도원 주인의 종들과 포도원 주인의 아들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을 보면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을 만들어서 울타리를 치고, 땅을 파서 포도즙을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세우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막 12: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이제 포도원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농부들이 포도 농사를 잘 지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 포도원 소출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포도 열매를 수확할 때가 되자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종을 포도원에 보내서 소출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막 12: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그런데 이 시점에서부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포도원 농부 비유의 첫 번째 특징으로 극적 긴장감이 돌기 시작합니다. 긴장감의 원인은 포도원의 농부들이 포도원 소출을 포도원 주인에게 주지 않으려고 첫 번째 보냄을 받은 종을 때리고, 빈 손으로 돌려 보내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막 12: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는 비유의 두 번째 특징으로 반복의 원칙이 등장합니다.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의 종을 때려 빈 손으로 돌려보내자, 포도원 주인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종들을 포도원 농장에 보냈는데, 농부들은 포도원 주인의 종들을 심히 때리고, 머리에 상처를 내고, 부끄러움을 주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막 12:4-5).
그러자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포도원에 보내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절한 죽음이었습니다.
(막 12: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막 12: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막 12: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이제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절정에 이루어서 비유의 세 번째 특징인 결말이 강조되어집니다.
(막 12: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여러 번 읽고 듣고 있기에 이 비유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포도원 주인의 종들은 선지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포도원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포도원의 농부들은 하나님을 잘못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소작인들 곧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지속적으로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선지자 오바댜는 선지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준 사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왕상 18:13)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예수님께서 성 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시간에도 이러한 일들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했던 세례 요한도 헤롯 안티파스(아내: 헤로디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막 6:14-9).
특별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첫번째로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정체성 곧 기독론을 밝히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한 사람 곧 남은 아들은 포도원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로서 상속자입니다. 마가복음에서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난 후에 하늘부터 들려온 음성이고(막 1:11), 예수님께서 다볼산에서 변형되셨을 때에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막 9:7)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의 농부 비유에서 사랑하는 아들은 예수님으로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두번째로,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농부들의 결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용하시는 ‘진멸하다’는 동사는 비참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의 최후의 심판이 어떠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세번째로,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설명하시기 위해서 시편 118편 22-2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서 건축자의 버린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막 12: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막 12:11)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다윗이 사울의 버림을 받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비유로 다윗이 예언하고 있는 시의 내용인데, 이러한 약속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복음)위에 세워졌다고 하면, 교회의 모퉁이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퉁이돌이란 가장 먼저 놓인 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모퉁이 머릿돌이 되신 것은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릿돌이 되어서 복음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의 기간 동안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고 하면,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하여 복음의 기초를 놓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심으로 인하여 언약의 백성 밖에 살고 있었던 우리들이,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믿지 않았는데 복음이신 예수님께서 모통이의 머리돌이 되어서 교회를 세우신다는 사실을 믿고 복음을 증거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