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국에서 백석 대학교 신학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에 저에게 구약 신학을 가르쳐 주신 류호준 교수님(백석 대학교 은퇴 교수)은 훌륭한 신학자이자 설교가 이십니다.
늘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신학을 가르치셨고, 성경을 “덮어 놓고 읽지 말고 열어 놓고 읽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신학생들이 성경의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고 성경을 읽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늘 제가 류호준 교수님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교수님의 시편에 대한 정의에 제가 깊은 공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류호준 교수님은 시편을 세 단어의 한자로 정의하셨는데 바로 바람 풍(風) / 길 도(道) / 기도 기(祈)입니다.
류호준 교수님의 “풍도기”라는 시입니다.
바람 잦을 날이 없는 인생 길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왔습니다.
이 길의 끝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영원한 세계가 펼쳐질 것을 압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석경으로 보는 것 처럼 희미하지만
그 때에는 청옥이 펼쳐진 하늘 아래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듯이 모든 것이 선명할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오늘도 걷고 또 걸어갑니다.
기도하면서 그럴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 가운데에서 시편 42편 1절의 말씀을 읽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우리가 이미 생각해 본 것처럼 5권으로 구성이 되어져 있는 시편은 모세 오경의 순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42편은 제 2권으로 시작으로 출애굽기와 연결이 되어져 있습니다.
시인은 출애굽의 과정을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과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을 하는 과정은 쉬운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10가지 재앙을 거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면한 홍해(Red Sea)는 이집트의 나일강이 아닙니다. 홍해의 길이는 1,900킬로미터에 달하고, 넓이는 300킬로미터에 달하고, 평균 깊이가 490미터이며, 얕은 곳은 185미터, 깊은 곳은 3,040미터나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뛰어 넘는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놓으셨습니다.
(출 14: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이러한 경험을 한 모세는 출애굽기 15장 13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시인은 모세의 마음으로 시편 42편 1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간절함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을 갈망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비방의 소리와 절규의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어떻게 저에게 이러한 일들이 발생합니까?”
그러기에 우리들은 시편을 읽으면서 바람 풍(風) / 길 도(道) / 기도 기(祈)를 생각해 봅니다.
바람 부는 길 위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시인의 모습이라고 하면, 우리들도 시인이지 않습니까?
때로는 산들 바람이 불어서 우리들을 시원하게 하지만,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의 센 바람이 불기도 하고, 나무 자체가 뽑히는 노대 바람이 불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바람 부는 길 위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간절함 같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는 왜 이렇게 센 바람이 불어요?”
그러면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감당 할 수 있는 바람만 부니 너무 걱정 말고 피할 길도 만들어 줄께 기도해…!”
오늘도 바람 부는 길 위에서 기도하는 시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캐나다 토론토 쉴만한 물가 교회에서 김윤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