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Jn 7:39) By this he meant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later to receive. Up to that time the Spirit had not been given, since Jesus had not yet been glorified. (NIV 1984)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은 오순절 성령의 사건(행 2:1-13)을 통하여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은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져 각 사람들 위에 임하여 충만했고, 성령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는데 사람들이 각각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행 2:3-4).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우리들에게 강한 체험의 역사로 이해되어집니다.
그런데 누가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성령을 받기 위한 세 단계를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첫째, 회개하라
둘째,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셋째, 그리하면 결과적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라는 공식으로 설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성령을 받은 자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한 곳은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σώθητε)(행 2:40)입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의 모습 가운데에서 불 같은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체험적인 신앙만을 추구하는 성향들이 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약 백이십 명의 성도들에게 임한 성령의 경험을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경험하기를 원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치유의 역사로 동일시하는 성향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시선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에 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성령의 사역을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이나 치유의 사건으로만 제한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3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37…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생수의 강의 의미를 요한복음 7:39절에서 “성령”이라고 언급하고 계십니다.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믿음과 성령이 서로 연결이 되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 보면,
“나를 믿는 자는…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라는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을 사도 요한은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대상과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믿음의 대상이 ‘예수님’인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한 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의 내용을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둘째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면 우리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성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책망하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 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사도 바울도 성령과 믿음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은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이러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언어와 행동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면서 예배의 공동체로 모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성령님이 주시는 평안을 전합니다.
캐나다 토론토 쉴만한 물가 교회에서 김윤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