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택함을 받은 사람입니까?
(롬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우리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선택의 교리입니다.
“나는 선택을 받은 사람인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신학적인 논쟁을 가져옵니다. 어릴 적 저의 기억에도 “만일 우리가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는데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라는 질문으로 많은 대화들을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화의 결론은 하나님의 영역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겸손히 하나님을 믿고 신앙 생활을 하자입니다.
네 올바른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권한 밖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그런데 목사로서 교회를 섬기다 보면, 이러한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이미 누가 선택 받을 사람인지 결정해 놓으셨다고 하면 아무리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해도 천국에 못 가는 것은 아닌가요?”
이러한 질문은 잘못된 선택론의 이해가 낳은 문제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점들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시작된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시라면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갈 2:8)로서 복음을 증거하고 감옥에 갇힐(엡 3:1) 이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유대인 중심으로 결정이 되어진 상황 가운데에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순종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데 영향을 미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이단들도 잘못된 선택론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계시록 7장 4절과 14장 1, 3절의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를 선택 받은 사람들로 한정하면서 그 안에 들어가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논리로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선택론에 관하여 사도 바울의 말씀을 통하여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서를 읽어 보면 로마서 1-8장의 내용 중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8장에서 “유대인”이라는 단어와 “이방인”이라는 단어만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9장 4절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Ἰσραηλίτης)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유대인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습니다(롬 9:4).
그런데 9장 6절의 말씀을 통하여 분위기가 반전되어지면서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의 논쟁으로 들어갑니다.
(롬 9: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육신으로 낳은 아브라함의 자녀가 다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낳은 자녀 이삭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9:7).
(롬 9: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결과적으로 이삭의 탄생과 관련하여서 선택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는데, 선택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자입니다(창 15:5-6).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기에서 우리들은 선택론과 관련하여서 중요한 첫 번째 원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가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까?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자입니다.
선택론의 두 번째 원리는 조금 더 어렵게 전개가 되어집니다. 로마서 9장 11-18절에 기록이 되어져 있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와 모세와 바로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은 로마서 9장 11절에서 해석적인 난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롬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선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선과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셨다는 표현으로 많은 오해를 가져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을 문자적인 해석에서 의미적인 해석으로 바꾸어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통하여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은 (율법적)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 표현을 통하여 율법적 행위를 강조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잘못된 시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해석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모세와 바로의 예를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과 긍휼하심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연결시켜서 설명합니다(롬 9:15-18).
(롬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이 말씀을 읽고 우리들은 한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누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자입니까?
사도 바울이 인용하고 있는 출애굽기 33장 19절의 배경을 보면,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장면이 시내산에서 진행 되어질 때에 아론과 백성들이 금 송아지를 만드는 장면입니다(출 32:1-6).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에서 내려가라고 하시는데(출 32:7),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 주지 않으시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요청합니다(출 32:32). 모세의 간절한 회개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출애굽기 33장 19절의 말씀입니다.
(출 33:19) …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 15절에서 이 말씀을 이렇게 인용을 합니다.
(롬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결과적으로 우리들은 두 번째 중요한 선택의 공식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자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자입니까?
회개하는 자입니다.
이제 선택론에 관한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들은 두 가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소유한 자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 곧 긍휼하심을 받은 자로서 회개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사건에 관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회개하고 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보다 더욱 더 우리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도록 회개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거룩한 성도라는 믿음의 확신은 우리가 간절히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에 이루어집니다.
함께 손잡고 믿음을 지키고 회개하며 천국에 갑시다.
캐나다 토론토 쉴만한 물가 교회에서
김윤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