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3일 주일 설교 (RWGC)
본문: 마가복음 1:16-18
제목: 사람을 낚는 어부 (1)
부제: 마음의 변화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막 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막 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삶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저자가 처해 있는 공동체의 상황과 신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학적 차이점을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에스겔서 1장 5, 10절에 기록이 되어져 있는 네 생물과 사복음서의 특징으로 연결시켰는데, 네 생물은 사람의 형상, 사자의 얼굴, 황소의 얼굴, 그리고 독수리의 얼굴입니다.
가장 먼저 이러한 시도를 한 인물은 2세기 초반에 리용의 St. 이레네우스(St. Irenaeus of Lyons. 120-202 A.D.)이고, 그 이후 4세기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72-373 A.D.)와 St. 제롬(St. Jerom 347-420 A.D.)과 St. 어거스틴 (St. Augustine 354-430 A.D.)입니다.
이러한 주장들 가운데에서 St. 제롬의 주장이 중세의 화가들에게 일반적으로 받아 드려졌는데, St. 제롬에 의하면 마태복음을 상징하는 동물은 사람(천사)이고, 마가복음은 사자, 누가복음은 황소, 그리고 요한복음은 독수리입니다.
이러한 사복음서와 네 생물의 연결은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내용은 아니므로 우리가 직접적인 연관성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사복음서가 각기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만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초기 교부들로부터 시작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게 되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가복음 1장 16-18절은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부르시는 사건입니다. 이 기록은 마태(마 4:18-20)와 누가(눅 5:1-11)도 기록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요 1:35-42) 조금 다른 각도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마가, 마태, 누가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의 상황을 다시 한번 재구성해서 우리들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마태는 마가복음의 기록과 거의 동일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차이점은 마태는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라고 명시(마 4:18)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 주시는 장면은 열두 제자를 세우시는 장면으로 마가복음 3장 16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마가와 마태의 기록의 의하면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신 장소는 갈릴리 해변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호수입니다. 북쪽의 헤르몬 산에서 발원한 물이 갈릴리 호수를 지나 요르단 강으로 흘러 사해로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신 갈릴리 해변은 어디일까 궁금증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질문에 답변이라도 하듯이 누가는 그 장소가 가버나움 아래 지역인 게네사렛 호숫가라고 언급하면서 갈릴리 호수의 서, 북쪽임을 알려 줍니다. (눅 5:1)
그러면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를 만났을 때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을까 하는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가복음 1장 17절의 말씀을 보면,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마태복음을 보아도 마가복음과 큰 차이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의 상황의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버나움 지역에서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눅 4:31-36) 후에 예수님의 소문은 가버나움 근처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눅 4:37)
그리고 누가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위치한 시몬의 집에 들어가셔서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는 사건을 누가복음 4:38-39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는 가버나움 아래쪽애 위치한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고기잡이를 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눅 5:5)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눅 5:2)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다가 가셨고, 자신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밤새 물고기를 잡기 위한 수고가 헛되이 돌아간 후에 베드로의 마음은 그리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있었고, 자신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배에 태워서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조금 움직여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눅 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누가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모습을 “διδάσκω”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마태복음 5장 2절의 말씀에 근거해 보면, 이 동사는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실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올라 무리들을 가르치셨다는 것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성육신 하신 목적이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마가복음 1:38절과 누가복음 4:4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다 함께 마가복음 1:3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의 입술을 통하여 전파되어진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들은 시몬 베드로는 마음의 변화를 느끼게 됩니다.
비록 밤을 새며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던 자신의 노력이 헛되이 돌아갔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은 베드로의 마음을 만져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에 순종하게 되어집니다.
[(눅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참된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들은 자들에게는 마음의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누가복음 24장 13-35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만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24장 27절에서 두 제자에게 설명하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리고 이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떠나시고 난 후에 마음의 변화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눅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시몬 베드로에게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에 마음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누가복음 5장 5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의 가장 큰 변화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변화는 기적을 만들어 냈고,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마음의 변화가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만일 우리들이 말씀을 듣고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말씀을 들을 때에는 은혜를 받았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누가복음 1장에 기록되어져 있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가브리엘 천사의 대화를 통하여 사람의 지혜로는 불가능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시몬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부 경험으로는 이 시간에 깊은 곳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에 마음의 변화에 의한 순종은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누가는 이 모습을 누가복음 5장 6-7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은 제한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둘째로, 기적을 경험하게 하는 순종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지난 밤 물고기를 한마리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기적을 경험했을 때에, 자신의 연약함을 바라보게 됩니다.
시몬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보면, 베드로는 누가복음 5장 5절에서 예수님을 “선생님”(ἐπιστάτης)으로 부르고 있었지만, 기적을 경험하고 난 후에는 “주여”(κύριος)로 부르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베드로는 자신이 경험한 이 기적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 앞에 서 있는 예수님을 통하여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고생을 하였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죄인의 모습으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업드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이 있는 시몬 베드로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가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다음 시간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의 지식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기적이 일어나고, 기적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죄인인 자신이 모습을 바라보는 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우리들을 부르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의지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