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9일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6:45-52
제목: 바다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능력은 사람들의 시각에서 바라는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지난 두번의 시간을 통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우리들은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는데,
첫째, 기적은 임마누엘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둘째, 기도는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을 연결하시는 통로입니다.
셋째,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의 성만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이후에 즉시(εὐθὺς)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태워서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와 빌립의 고향인 벳새다(요 1:44)에 보내시고 예수님께서는 오천명의 무리들을 헤쳐 보내시는 장면으로 시작을 합니다.
무리들을 보내시고 난 후에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이 본문 46절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막 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우리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기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마가와 달리 마태복음을 보면, 마태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기도하러 가셔서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 14:23)라는 문구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에 혼자 계신 자리를 찾아 기도하러 갔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영적 소통을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시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들은 마가복음 1장 35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이른 새벽에 기도하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시몬 베드로와 함께 있던 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전하였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1장 38절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기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전하시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적인 사건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떨어져 있는 상황 가운데에서 발생합니다.
날이 저물어 가고 있을 때에 제자들의 배는 갈릴리 호수가 한 가운데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홀로 육지에 계셨습니다(막 6:47).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거스르는 바람 속에서 노를 젓느라고 고생하는 역경(plight)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대하시는 중요한 관점을 바라보게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역경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떠나시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마가는 본문 48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6: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제자들은 해가 진 시간부터 새벽 시간까지 배 위에 있었는데, 본문에서 ‘사경쯤’은 새벽 3-6시 경입니다.
제자들 가운데에서 어부가 누구입니까?
바로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어부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마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가려는 모습을 보면 어부였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요 21:2) 빌립도 안드레와 베드로와 함께 벳세다 사람이고, 벳세다가 ‘어부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빌립도 어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12제자 중에서 반이 어부이고 베드로와 안드레와 빌립은 벳세다 사람으로 자신들의 고향 마을의 갈릴리 호수 환경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갈릴리 호수 한 가운데에서의 역경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한가지 의문이 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본문 48절 하반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막 6:48) …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돌보시지 않고 지나가려 하신 것입니까?
혹시 번역상의 문제가 없습니까?
“지나가다”는 헬라어 동사 “파레르코마이”(παρέρχομαι)는 to pass by로 번역상의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헬라어 동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상 다른 해석이 가능한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한국어 번역상에서는 그 의미를 살리지 못했는데 헬라어를 보면 “지나가다”라는 동사와 함께 사용이 되는 동사가 “원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지나가기를 원하셨다는 문자적 의미가 되는데, 이 의미를 “구원하기를 원하셨다”는 신학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경에 의하면 “파레르코마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이 된 것을 보면(e.g., 출 33:17-34:6; 왕상 19:11-13), 이 단어가 1세기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해석이 되어서 구원하기 원하셨다는 의미로 적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들어내시고 구원하시려고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과학적 지식 때문에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하려고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이유는 본문 48절에 “바다 위로 걸어서”라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적 지식은 “중력”(gravity)입니다. 제자들이 중력의 법칙을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제자들도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49)을 보면 그들도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대답은 무게가 없는 유령(weightless ghosts)이라고 소리지르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본문 50절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막 6: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의미보다, “내니”라고 번역이 되어져 있는 문구입니다.
“내니”(ἐγώ εἰμι)라는 영어 표현을 보면, “It is I”라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는 표현의 “I am who I am”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다시 한번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이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가와 요한과 달리 마태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14:28-31).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물에 빠지는 장면을 기록하면서 믿음이 작은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은 것은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고,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죽음의 문제가 다가왔을 때에 무너졌고 믿음의 연약함을 보였습니다.
(막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우리가 예수님의 능력을 성경을 통하여 알고 있으면서 우리들의 삶에 적용을 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제자들의 실패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가장 어렵고 힘이 들 때, 예수님께서 다가오시고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적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다에 길을 내셔서 제자들에게 걸어오셨고, 베드로에게 걷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보고 무서워 예수님을 잊고 있을 때에 물에 빠진 것처럼, 우리가 무너지는 이유는 세상을 보고 무서워하면서 하나님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어렵고 힘이 들 때, 그 누구도 희망이 없다고 할 때에 갈릴리 호수에 길을 내시고 걸어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리더십이 교체 되는 상황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 하신 것처럼 내가 걸코 너희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신 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무엇을 무서워하고 두려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갈릴리 호수에 길을 내시고 걸어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피할 길을 만들어 주십니다. (고전 10:13)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