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8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예배
마가복음 12:38-40
높임을 받기 보다 섬기는 삶
포도원의 비유(막 12:1-12) 이후에 기록되어져 있는 종교 지도자들과 예수님의 대화를 생각해 보면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려서 시험하기 위해서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세금과 관련된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의 질문과 부활과 관련된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에 형상화 되어져 있는 로마 황제의 모습을 통하여 로마 황제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또한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에게는 그들이 성경을 잘못 이해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제시하십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형상을 입은 피조물로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천국의 시민권자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은 서기관 중 한 사람의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고백하고 있는 시편 110편 1절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국의 보좌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메시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 제사장의 심문을 받는 마가복음 14장 61-62절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 이후에 오순절 성령의 사건을 경험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시편 110편 1절의 말씀을 재 인용하여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선포합니다.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오늘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12장 38-40절의 말씀을 통해서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의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에서 서기관들의 잘못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서기관들은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구약 시대에 왕궁의 역사를 기록했던 서기관(삼하 8:17)들은 학자들이면서 높은 관리였습니다. 서기관들은 어릴 적부터 글을 배우는 특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율법을 필사 하면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있었고(대하 34:13; 스 7:12), 유다 가문에도 서기관이 있었습니다(대상 27:32). 서기관들 중에서 일부는 일반 백성들의 문서를 작성해 주거나, 행정 기관에서의 역할도 하면서 대중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에 서기관들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면서 종교 그룹을 형성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라 7: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에스라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400년을 지나면서 1세기의 서기관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에 많은 의석을 차지하면서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세기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의하면 서기관들은 탁월한 율법에 관한 지식과 성경 해석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신 서기관들의 모습은 종교적 악습에 의해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서기관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서기관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막 12: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막 12: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의 어떠한 모습을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긴 옷을 입고 다니는 서기관들을 조심하라.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이 긴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서기관들은 제사장과 같은 긴 옷을 입고 다녔는데, 이러한 종교적인 의복은 서기관들을 구분하는 의복이기 보다 종교 지도자로서 자신들의 명성과 부를 상징하고 있는 의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서기관들이 이러한 긴 의복을 입었을 때에 그들이 내면에는 오만과 거짓된 경건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시편 1편 1절의 말씀에서 생각해 본 것처럼 오만이라는 히브리어 명사는 언어와 행동에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시편 1편 1절에서 ‘오만한 자’는 ‘말을 함부로 하다’는 동사에서 ‘수다쟁이, 허풍쟁이’라는 명사가 형성화 되면서 ‘오만한 자, 조롱하는 자’의 의미를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4장 16절의 말씀을 보면 야고보는 오만함 가운데에서 자랑하는 행동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이 의미를 살리지 못했는데 저의 번역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개역 개정 성경: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약 4:16) 이제도 너희가 오만함 가운데에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결과적으로 서기관들이 긴 의복을 입고 다니면서 의도했던 모습은 자신의 잘못된 경건을 오만함 가운데에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둘째, 긴 옷을 입고 시장에서 문안을 받는 것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조심하라.
오만과 잘못된 경건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높이려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 결과 서기관들은 시장에서 종교와 관련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의 시기를 거치면서 제사장과 서기관의 역할을 했던 에스라가 원했던 모습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기 보다 자신들의 위치를 이용해서 백성들로부터 인사를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셋째,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회당에서의 높은 자리와 잔치에서의 윗자리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무엇입니까?
바로 권력이고 교만입니다. 이러한 권력은 백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서기관들이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스스로 만들어 낸 권력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권력은 폐단을 만들어 내는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잘못된 힘을 만들어 내서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억눌러서 섬김을 받고자 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율법을 연구하는 서기관들이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서 권력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4장 7-11절의 말씀에서 참된 리더십의 모습을 가르치고 계신데 혼인 잔치에서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으면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 의해서 부끄러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눅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넷째, 본문 40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의 잘못된 행동은 중한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막 12: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과부의 재산을 가로채서 이득을 취한다는 의미입니다.
1세기 당시에 남편을 잃은 여인은 사회적 약자 중에서 가장 취약한 분류에 해당이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남편을 잃은 여인은 자신과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서기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사회적 약자에 해당이 되어지는 남편을 잃은 여인들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가운데에서 외식하는 모습이 있다고 하면 이러한 기도는 헛된 기도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에서 어떻게 가르치십니까?
(마 6: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을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면서 먼저 목회자인 저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목회자들의 역할은 섬김을 받거나 높임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이고, 권력을 갖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현대를 살아가는 목회자들을 바라보신다고 하면 동일한 책망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해야 할 목회자들이 스스로를 높이거나, 높임을 받고자 한다고 하면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