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1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예배
마가복음 12:18-27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
마가는 포도원의 농부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말씀하고 난 후에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세가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들은 포도원의 주인이 종들과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포도원의 농부들로부터 소출(열매)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아들까지 내어 줌으로 인하여 자신의 소출을 지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비유를 통하여 요한 마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원하고 계시고, 포도원의 농부들로 상징 되어지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그들이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비유가 끝이 난 후에 요한 마가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세가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의 세금과 관련된 질문 (12:13-17)
-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질문 (12:18-27)
- 서기관 중 한 명이 예수님께 나아와 율법에 관한 질문 (12:28-31)
우리들은 세금과 관련된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의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메시지를 통하여 비록 데네리온에는 황제의 형상을 있지만, 황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의미를 통하여 영적 예배자의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백성들이 영적 예배자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이러한 모습은 국가의 의무를 다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의 의무를 다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내용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에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두개인들과 예수님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에게 정치적인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게 하려고 했다고 하면,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학적인 입장을 통하여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게 하려는 목적으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들은 사두개인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두개인이라고 하는 이름을 생각해 보면, 다윗과(삼하 8:17; 15:24; 왕상 1:8) 솔로몬(왕상 1:34; 대상 12:28) 시대에 대 제사장 직분을 맡고 있었던 아히둡의 아들 ‘사독’(צָדוֹק)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독’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의로움’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명사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가문들과 귀족 대표들이 속한 종교적 당파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제사장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넓은 사람들이 포함되어져 있는 보다 큰 정치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1세기 예루살렘의 인구가 2만 5000-3만명이었는데, 그 중 6,000명 정도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어떠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대중들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제사장의 무리들보다는 일반 유대인들, 그리고 성전보다는 회당을 중심으로 모여서 율법과 전통을 강조하면서 형식과 관습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뿐만 아니라 구전으로 전승되는 전통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와 반대로, 사두개인들은 조금 더 보수적이어서 모세 오경만을 받아 드렸고, 사두개인들은 율법에서 문자적인 해석을 뛰어 넘는 가르침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나, 천사와 영을 믿지 않았습니다(막 12:18; 눅 20:27; 행 23:8). 사두개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도 함께 죽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사두개인들의 질문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 신명기 25장 5-10절의 말씀에 기록되어져 있는 계대 결혼을 근거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5장 5-10절의 핵심적인 내용은 형제가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에만 적용이 되어지는 특별한 율법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구약 시대에 적용이 되어진 율법입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는 내용은 계대 결혼의 문제점이라기 보다, 만일 부활이 있다고 하면 계대 결혼을 통하여 일곱 형제가 한 여인과 함께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출산하지 못했다고 하면 부활의 상태에서 이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막 12:19)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막 12: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막 12:21)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막 12:22)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막 12: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이러한 질문에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의 목적에 맞추어서 답변을 한다고 하시면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답변을 하지 못하신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길 위에서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말씀하신 내용을 부인하게 되어서 신학적인 결함으로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의도된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먼저 24-25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막 12: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막 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첫번째로, 사두개인들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구약 성경에서는 죽음 후 부활에 관하여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사 26:19; 겔 37:1-14).
(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이사야서 26장의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승리를 허락해 주실 때에 악인들은 불의 심판을 받게 되지만 의인들은 부활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구약 성경에서 에녹(창 5:24)과 엘리야(왕하 2:1-14)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천국에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존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부활의 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두번째로 의인들의 부활의 복을 경험하게 되어질 성도들의 신분의 상태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부활의 삶이란 더 이상 이 땅에서의 삶의 연장선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결혼의 제도를 통하여 자녀를 출산하는 것이 부활의 상태에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경험하는 자들의 천사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한계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사고의 잘못을 말씀하십니다.
(막 12:26)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막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언급하고 계신 내용은 사두개인들이 인정하고 있는 모세 오경 중에서 출애굽기 3:2-6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출애굽기 3: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언약의 백성들에게 죽음이라는 문제를 뛰어 넘어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175세의 나이로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더 이상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역사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죽음은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들의 죽음이 우리들의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았고,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의롭게 되어져서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생을 바라보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신 것처럼,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사건을 믿고 나아가면 우리들에게도 부활의 복을 허락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함께 기도 드립니다.